살인의 해부 (Anatomy of a Murder, 1959)
살인의 해부 (Anatomy of a Murder, 1959)
제7의 봉인 (Det Sjunde Inseglet, 1957)
10년간의 지방 검사 생활을 마치고 변호사로 전업한 뒤 미시간의 작은 마을에서 낚시와 재즈 음악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폴 비글러(James Stewart)에게 로라 매니언(Lee Remick)이라는 미모의 여인이
살인 혐의로 체포된 남편 프레드릭 매니언(Ben Gazzara)의 변호를 의뢰한다.
현역 육군 중위인 프레드릭 매니언은 아내 로라 매니언을 강간하고 폭행한 바텐더 바니
퀼을 총으로 살해한 뒤 자수하여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프레드릭 매니언의 변호를 맡기로 결심한 폴 비글러는 프레드릭 매니언이 일시적인 정신 착란인
“참을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혀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무죄 선고를 받아 내려 한다.
폴 비글러는 자신을 지방 검사직에서 몰아낸 멍청한 후임 지방 검사 미치 로드윅(Brooks West)과,
미치 로드윅의 요청으로 재판에 참석하게 된 법무 차관보 클로드 댄서(George C. Scott)와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인다.
오토 프레밍거 감독의 ‘살인의 해부’는 영화 역사상 가장 뛰어난 법정 영화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영화이다.
‘살인의 해부’는 재판 과정에 대한 치밀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영화인데,
‘살인의 해부’의 제작에 두 명의 실제 법조인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살인의 해부’는 미시간 대법원의 판사였던
존 D. 뵐커가 검사 시절 다루었던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로버트 트래버라는 필명으로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각색한 영화이다.
그리고 ‘살인의 해부’에서 위버 판사(Joseph N. Welch) 역의 조셉 N. 웰치는,
미국 전역을 반공 열풍 속으로 몰아넣은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이 미 육군에도 공산주의자들이 침투해 있다고
고발하는 사건을 놓고 이루어진 육군-매카시 청문회(Army-McCarthy hearings)에 육군의 고문
변호사로 출석하여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에게 “도대체 당신에게는 품위라는 것도 없습니까?”
라고 말해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을 무너뜨린 장본인이다.
‘살인의 해부’의 이야기는 다른 법정 영화와는 달리, 재판의 대상 사건보다는 재판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살인의 해부’는 재판 과정에 대한 치밀하고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영화의 제목처럼 시체를 해부하듯이 사법 제도를 날카롭고
통렬하게 분석하여 사법 제도의 문제와 한계를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살인의 해부’에서는 재판의 대상인 살인 사건이나 강간 사건의 상황을 보여 주는 장면은 보여 주지 않고,
오로지 법정에서의 재판과, 재판과 관련된 주변 상황만을 보여 준다. 이를 통해 ‘살인의 해부’는 관객들도
배심원들과 같은 입장에서 재판을 판결해 보라는 의도와 함께, 과연 재판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지, 재판을 통한 판결이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관객들에게 제기하고 있다.
‘살인의 해부’에서 재판 중에 프레드릭 매니언이 폴 비글러에게 “이미 들은 내용을 배심원이 어떻게 무시하죠?”라고 묻자,
폴 비글러가 “못합니다. 못해요.”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폴 비글러는 검찰 측의 이의 제기와 위버
판사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무죄 선고를 받아 내기 위해 배심원들의 동정심을 자극하는 부적절한 발언들을 서슴지 않는다.
이를 통해 ‘살인의 해부’는 배심원들이 과연 개인적 주관의 개입 없이 사건의 진실에 근거한 객관적인 판결을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