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홀 (Annie Hall, 1977)
애니 홀 (Annie Hall, 1977)
설리반의 여행 (Sullivan’s Travels, 1941)
우디 앨런은 재능이 참 많다. 영화 감독, 각본가, 배우, 작가로서뿐만이 아니라, 재즈 뮤지션으로서 클라리넷 연주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우디 앨런은 지난 1월 24일에 발표한 아카데미상 후보를 포함하여 지금까지 총 23번이나 아카데미상 후보 – 감독상 후보 7번
각본상 후보 15번, 남우주연상 후보 1번 – 에 올랐으며, 각본상 후보 15번은 각본상 부문 역대 최고 기록이다.
우디 앨런은 총 3개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는데, ‘애니 홀’로 감독상과 각본상, 2개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고
‘한나와 그 자매들 (Hannah and Her Sisters, 1986)’로 각본상을 수상했다.
‘애니 홀’은 ‘스타 워즈 (Star Wars, 1977)’를 제치고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는데
‘스타 워즈’가 거둔 흥행 성적과 미국의 영화 산업에 끼친 영향력을 생각하면 오늘날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결과이다.
정말 ‘스타 워즈’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영화였다.
그러나 ‘애니 홀’이 보여주는 영화 형식도 ‘스타 워즈’ 못지않게 새롭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더 파격적이다. ‘스타 워즈’가 보여주는 새로운 영화 형식이 주로 영화 기술적인 측면에서 영화 제작 기술의 발전이라고 한다면
‘애니 홀’이 보여주는 새로운 영화 형식은 영화 예술적인 측면에서 영화 형식의 파괴 또는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CGI(Computer Generated Imagery)가 영화 제작에 보편화되고
화려한 특수효과 장면들이 판을 치는 오늘날 ‘스타 워즈’를 보면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애니 홀’은 여전히 참신하다.
우디 앨런이 주연, 감독, 각본을 맡은 ‘애니 홀’은 유쾌함 속에 사랑과 삶에 대한 사려 깊은 성찰이 돋보이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애니 홀’은 영화의 주인공인 앨비 싱어(Woody Allen)가 관객들을 향하여 장광설을 늘어놓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니나다를까 ‘애니 홀’에서 앨비의 직업 또한 성공한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희극 작가이다.
앨비는 스탠드업 코미디언답게 적절한 농담을 섞어가며 1년 전만 해도 사랑하는 사이였던
애니 홀(Diane Keaton)과 헤어지고, 고독, 비참함, 고통, 불행으로 가득차 버린 자신의 삶을 불평한다.
그리고 플래시백으로 애니와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진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애니 홀’은 앨비가 자신에 대한, 자신의 여성관에 대한, 그리고 애니와 헤어진 원인에 대한 자기 나름의 분석을 하고, 이를 통해 남녀 관계를 탐구하는 영화이다.
“La-dee-da, la-dee-da, la-la”
(라-디-다, 라-디-다, 라-라)
‘애니 홀’은 영화 내내 영화의 기본 규칙들을 깨뜨리는 온갖 기발한 영화 형식들로 관객들을 당황케 한다.
한 공간에 현재와 과거의 상황을 함께 배치하기도 하고, 화면을 분할하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을 삽입하기도 하는 등 여러가지 파격적인 형식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파격적인 형식들이 보편적인 정서와 현상을 표현하고 있어, 오히려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예를 들어 처음 만나 서로에 대한 탐색을 하고 있는 두 남녀 애니와 앨비가 애니의 아파트 테라스에서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두 사람의 속마음이 자막으로 드러난다. 서로에게 익숙해져 버린 애니와 앨비가
사랑을 나누는 도중,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애니의 영혼이 애니의 몸에서 분리되어 나와 딴짓을 한다.
앨비는 영화 속 캐릭터라는 신분을 넘어 마치 자기가 영화 감독인 양 – 물론 앨비를 연기하는 우디 앨런이 감독이긴 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영화를 컨트롤하며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드러낸다.
영화를 보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애니와 앨비의 뒤에 서 있는 한 남자(Russell Horton)가 페데리코 펠리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떠들어 대면서 애니와의 언쟁으로 가뜩이나 화가 나 있는 앨비의 신경을 건드린다.
남자가 마셜 맥루한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가자, 참다못한 앨비는 이제 남자와 언쟁을 벌인다.
앨비는 실제 마셜 맥루한(Marshall McLuhan)을 영화 화면에 데리고 나와, 마셜 맥루한이 남자에게 당신은 내 작품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군요라고 말하게 만들고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던 남자와의 언쟁을 끝낸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말한다. “정말 삶이 이렇기만 한다면.”
이외에도 앨비는 갑자기 카메라를 쳐다보고 관객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인터뷰를 해서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