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향해 쏴라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1969)
내일을 향해 쏴라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1969)
‘내일을 향해 쏴라’는 1890년대에 실제로 와일드 번치(The Wild Bunch) – 같은 해에 나온 샘 페킨파 감독의
‘와일드 번치 (The Wild Bunch, 1969)’와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는 와일드 번치라는 이름 대신에 “The Hole in the Wall Gang”이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데
Hole in the Wall은 와이오밍주에 있었던, 당시 부치 캐시디의 와일드 번치를 포함
여러 갱단과 범법자들이 은신처로 사용했던 장소의 이름이다 라는 갱단을 조직하여 열차와 은행을
대상으로 강도질을 한 “부치 캐시디” Robert LeRoy Parker와 “선댄스 키드” Harry Longabaugh의 이야기를 다룬 서부 영화이다.
‘내일을 향해 쏴라’가 나온 1960년대 후반은 아서 펜 감독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Bonnie and Clyde, 1967)’로 시작된
특히 젊은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형식의 영화 제작의 물결이 미국 영화계에 일고 있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나온 영화들의 가장 큰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사실성과 반항”이다.
기존의 영화들이 표현하지 못했던 폭력과 섹스에 대한 사실적이고도 대담한 표현과 함께
기성세대와 현실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나아가서는 사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또한 주로 범법자들 –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내일을 향해 쏴라’, ‘와일드 번치’ – 이나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들 –
‘이지 라이더 (Easy Rider, 1969)’, ‘미드나잇 카우보이 (Midnight Cowboy, 1969)’
그리고 사회에 아직 물들지 않은 순진한 청년 – ‘졸업 (The Graduate, 1967)’ – 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에 대한 동정심을 가지게 하여 잘못된 현실 사회를 부각시키고, 이러한 사회에 대한 비판에 동참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시기에 나온 영화들을 보면 대부분 영화의 이야기나 분위기가 굉장히 어둡고 비관적이다.
‘내일을 향해 쏴라’는 이 시기에 나온 다른 영화들에 비하면 비교적 밝고 경쾌한 분위기의 영화인데
그래서 겉보기에는 단순히 코믹하고 쾌활한 서부 액션 영화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 시기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반항과 슬픔이 짙게 배어 있는 영화이다.
부치 캐시디(Paul Newman)와 선댄스 키드(Robert Redford)는 표면적으로는 열차와 은행을 터는 범법자들이지만
상징적으로는 모순된 사회에 반기를 든 반항아들이다 – 사회의 엘리트를 상징하고 있는 유니언 퍼시픽 철도 회사 직원인 우드콕(George Furth)과는 극히 대조적이다.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는 유니언 퍼시픽 열차의 금고를 연거푸 털고, 결국 유니언 퍼시픽 철도 회사
사장 E. H. 해리먼(Edward Henry Harriman)이 고용한 사람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이 추격전은 실체 없는 사회의 억압을 상징하고 있는데, 영화에서도 추적자들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는 이 정체 모를 추적자들에게 쫓기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서로에게 하는 “Who ARE those guys?”라는
대사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고 있는데, 이 대사에는 실체가 없는 사회의 억압에 대한 분노와 그에 대한 반항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