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12년 (12 Years a Slave, 2013)
노예 12년 (12 Years a Slave, 2013)
‘노예 12년’은 영화를 보지 않아도 영화의 제목으로부터 어떤 영화인지, 그리고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인지까지 짐작할 수 있는 영화이다.
‘노예 12년’의 원작이 실존 인물 솔로몬 노섭(Solomon Northup)이 자신이 경험한 12년 간의 지옥 같고 절망적이었던 노예 생활을
기록한 동명의 베스트셀러라는 것을 알게 되면 더욱 확실해진다.
사실 흑인 노예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는 이야기와,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한정되어 있다.
‘노예 12년’도 솔로몬 노섭(Chiwetel Ejiofor)의 12년 간의 노예 생활의 이야기를 통하여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하지만 ‘노예 12년’은 이전의 흑인 노예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와는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조금은 다른 영화이다.
미국이 노예 제도를 따르는 남부의 노예주와 그렇지 않은 북부의 자유주로 나뉘어져 있던 때에,
자유인으로 태어나 뉴욕주 사라토가에서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리던 솔로몬 노섭은 1841년에
워싱턴에서 납치를 당해 하루아침에 노예로 전락, 남부 루이지애나로 팔려간다.
솔로몬 노섭은 노예 제도를 반대하는 캐나다인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구출되어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까지 12년 동안 노예로 지옥 같은 삶을 살게 된다.
‘노예 12년’은 이전의 흑인 노예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와는 달리 이야기나 장면들이 자극적이지 않다.
물론 ‘노예 12년’에서도 흑인 노예들이 백인들로부터 채찍질을 당하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대단히 절제되어 있다.
따라서 ‘노예 12년’은 언뜻 보면 대단히 무미건조해 보이는 영화이다.
‘노예 12년’은 흑인 노예들과 백인들 사이의 자극적인 이야기나 장면들보다는 백인들의 소유물로 취급 받으며 인권을 짓밟힘 당한 흑인
노예들이 느끼는 절망과 정신적 고통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당연한 듯 흑인 노예들을 부리면서 스스로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백인들을 흑인 노예제의 사회적 모순의 관점에서 담담하게 바라보는 영화이다.
이를 통해 ‘노예 12년’은 흑인 노예제 당시의 상황에 국한하지 않고, 인권이 짓밟히고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현대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노예 12년’에서의 흑인 노예들의 삶과, 이들이 느끼는 절망과 정신적 고통은 비참하다.
특히 악독한 노예주 에드윈 엡스(Michael Fassbender) 밑에서 낮에는 목화밭에서 부림을 당하고,
밤에는 에드윈 엡스로부터 강간을 당하고, 엡스 부인(Sarah Paulson)으로부터는 갖은 멸시와 폭행을 당하던 팻시(Lupita Nyong’o)가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나고자 솔로몬 노섭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은 정말 비참하다.
루이지애나로 가는 배 안에서의 솔로몬 노섭의 대사는 단지 인간답게 살고 싶은 흑인 노예들의 처절한 절규이다.
“그러니까, 난 살아남고 싶지 않아. 그냥 살고 싶어.”
솔로몬 노섭은 노예 12년 동안 두 명의 주인, 포드(Benedict Cumberbatch)와 에드윈 엡스를 차례로 만나게 되는데,
‘노예 12년’의 이야기 구조는 이 두 주인의 등장에 따라 마치 2막처럼 구성되어 있다.
1막에 등장하는 포드는 2막에 등장하는 에드윈 엡스와는 달리 흑인 노예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해 준다.
하지만 솔로몬 노섭이 자신의 밑에서 일을 하는 목수이자 지독한 인종 차별주의자인 티비츠(Paul Dano)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자,
자신의 신분과 생명의 위협을 느낀 포드는 솔로몬 노섭을 지켜 주지 못하고 에드윈 엡스에게 팔아 버린다.
포드는 인간적인 면모를 지녔지만 흑인 노예제의 사회적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