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바로 살아라 Do the Right Thing 1989
똑바로 살아라 Do the Right Thing 1989
‘똑바로 살아라’는 인종 문제라는 결코 유쾌하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고, 또 특별한 이야기 없이 폭동이 일어나기 전의 거리의 일상을 보여주는 이야기
구조로 인해 따분해질 수도 있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스파이크 리 감독은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의 화면,
클로즈업시킨 화면, 카메라를 약간 기울여 찍은 화면, 그리고 강렬한 랩 음악 등을 앞세운 흑인 문화 특유의 톡톡 튀는 스타일로 영화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다.
특히 화면을 전체적으로 오렌지색으로 처리하여 무더운 여름날과, 인종 문제로 인한 이웃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
스파이크 리 감독이 흑인 영화감독인 만큼 ‘똑바로 살아라’는 인종 문제를 흑인들의 입장에서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스파이크 리 감독이 ‘똑바로 살아라’에서 흑인들을 두둔하지는 않는다.
경찰의 가혹 행위로 죽는 라디오 라힘은 결코 똑바로 사는 청년은 아니다.
라디오 라힘이 애지중지하며 항상 들고 다니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음에 가까운 음악은 샐뿐만
아니라 길모퉁이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세 흑인 노인들까지 미치게 만든다.
라디오 라힘과 함께 샐의 피자 가게에서 싸움을 일으킨 버긴 아웃은 샐의 큰아들 피노만큼이나 인종 차별주의자이다.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샐의 피자 가게에 이태리인의 사진들만 걸려 있고 흑인의 사진은 없다며 샐의 피자
가게를 보이콧하는데 흑인들의 동참을 유도하지만 어느 누구도 동참하지 않는다.
오히려 흑인들로부터 타박만 듣게 된다.
스파이크 리 감독은 흑인들이 샐의 피자 가게를 불태우고, 건너편에 있는 한국인 상점마저
불태우려는 장면을 통해 흑인들도 인종 문제에 있어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샐의 피자 가게에서 배달부로 일하는 무키가 쓰레기통을 샐의 피자 가게에 던지면서 폭동이 시작된다.
‘똑바로 살아라’의 원제목을 정확하게 번역하면 “옳은 일을 해라”이다.
다 메이어는 피자 배달을 가는 무키를 불러 세워 말한다.
“항상 옳은 일을 해라.”
쓰레기통을 샐의 피자 가게에 던진 무키의 행동이 과연 옳은 일이었는지, 즉 무키의 행동이 격분한 흑인들로부터 샐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단지 친구인 라디오 라힘의 죽음에 대한 분노였는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무키가 쓰레기통을 샐의 피자 가게에 던지는 장면을 자세히 보면, 이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스파이크 리 감독의 의도된 연출이었는지조차도 애매모호하다.
하지만 무키의 행동이 샐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라디오 라힘의 죽음에 대한 분노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스파이크 리 감독의 의도된 연출이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는 영화의 마지막에 자막으로 나오는 서로 상반된 주장의 두 개의 인용문, 즉 어떠한 폭력도
비실용적이며 비도덕적이라는 마틴 루터 킹의 말과, 자기 방어를 위한 폭력은 지력이라는 말콤 X의 말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스파이크 리 감독은 무키의 행동을 통해 인종 문제에 맞서기 위한 폭력의 사용에 대해 관객들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똑바로 살아라’에서는 인종 문제와 관련된 실제 사건들이 많이 언급되고 있다.
무키가 여동생 제이드에게 샐의 피자 가게에 오지 마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벽에 “Tawana told the truth!(타와나는 진실을 말했다!)”라는 낙서가 보이는데,
이는 1987년 15세의 흑인 소녀 Tawana Brawley가 자신을 강간했다고 6명의 백인들을 고소했으나, 배심원들은 모든 것이 Tawana Brawley의 자작극이라고 평결을 내린 사건에 관한 것이다.
또한 라디오 라힘이 죽자 샐의 피자 가게에 모인 사람들이 경찰이 라디오 라힘을 죽였다며 Michael Stewart와 Eleanor Bumpurs를 언급하는데, 두 명 모두 경찰의 가혹 행위로 죽은 흑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