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반의 여행 (Sullivan’s Travels, 1941)
설리반의 여행 (Sullivan’s Travels, 1941)
“시공간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웃음을 주고, 우리에게 삶의 짐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주기 위해 노력한 어릿광대들과 익살꾼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
할리우드의 유명한 코미디 영화 감독인 존 L. 설리반(Joel McCrea)은 이제 가벼운 코미디 영화보다는 현시대를 보여주는
아주 사실적인, 보통 사람들이 직면하는 문제들을 다룬, 다큐멘터리적인, 삶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인간의 고통을 그린
사회적이고 예술적인 매체로서의 영화의 잠재력을 실현시킬 수 있는, 그런 품위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설리반은 영화 제작사 간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다룬 영화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설리반은 영화의 소재를 찾기 위해 가난한 떠돌이로 위장을 하고 거리로 나가, 가난과 고통을 직접 체험해 보기로 결심한다.
‘ 설리반의 여행 ‘의 전반부, 즉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보호 시설에서 “소녀”(Veronica Lake)와 함께 가난을 체험하는
설리반을 6분 30초동안 대사 하나 없이 보여주는 장면까지는 특별한 내용이 없는 그저 그런 코미디 영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설리반이 가난을 체험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이야기들을 코믹하게 다루고 있다.
히치하이커로 얻어 탄 트럭이 자신을 할리우드에 내려 놓는 바람에 가난은 체험해 보지도 못하고 여정의 출발점으로 되돌아오고
식당에서 만난 “소녀”와 함께 다시 가난을 체험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지만, 화물 열차에서 잠을 자다 감기에 걸려 또다시 가난은 체험해 보지도 못하고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
‘설리반의 여행’의 후반부는 코미디보다는 주로 드라마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설리반은 “소녀”와 함께 가난과 배고픔의 고통을 체험한다.
설리반은 자신에게 영감을 준 가난한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돈을 나누어주다 돈을 노린 늙은 부랑자(George Renavent)
공교롭게도 이 늙은 부랑자는 설리반의 신분증이 숨겨져 있는 설리반의 신발을 훔쳤던 자이다 – 의 습격을 받고 화물 열차에 버려진다.
다음날 정신을 차린 설리반은 한 철도 노동자로부터 심한 모욕을 당하고
이에 격분한 나머지 철도 노동자를 구타하는 바람에 법정에서 6년의 중노동의 형벌을 받게 된다.
설리반은 강제 수용소에서도 “미스터”(Alan Bridge)라고 불리는 교도관으로부터 심한 모욕을 당한다.
어느 일요일날 강제 수용소의 죄수들이 지역의 흑인 교회에서 영화를 관람한다.
설리반은 교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디즈니 만화 – ‘Playful Pluto (1934)’ – 를 보고 웃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특히 뜻하지 않게 강제 수용소에 갇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음에도 디즈니 만화를 보고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설리반은
괜히 심각하고 우울한,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와 같은 영화보다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사람들에게 삶의 짐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줄 수 있는 코미디 영화를 만드는 것이 훨씬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설리반의 여행’을 접하기 전에는 프레스턴 스터지스 감독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설리반의 여행’을 보고 나서 프레스턴 스터지스 감독이 코미디 영화 감독이었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단지 ‘설리반의 여행’이 코미디 영화이기 때문이 아니라, ‘설리반의 여행’에서 코미디 영화 감독인 설리반이 프레스턴 스터지스 감독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리반의 여행’은 프레스턴 스터지스 감독이 설리반을 통해 대공황으로 힘든 시기에 코미디 영화만을 만드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는 영화이다.
프레스턴 스터지스 감독은 ‘설리반의 여행’을 통해 자신이 코미디 영화를 만드는 것을 가치롭게 여기면서, 사회적 문제를 다룬 진지한 영화를
만드는 할리우드 영화 감독들의 허세를 풍자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설리반의 여행’의 마지막 부분에서 설리반이 영화화하고자 했던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의 소설책을 보여주는데, 소설책에 저자의 이름이 싱클레어 벡스타인으로 되어 있다.
벡스타인은 존 포드 감독의 ‘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the Wrath, 1940)’의 원작자인 존 스타인벡을 연상시킨다.
‘분노의 포도’는 대공황기의 한 서민 가족의 비참한 삶을 다룬, 존 포드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사회 의식이 깊게 반영된 영화이다.
프레스턴 스터지스 감독은 영화를 예술 작품으로보다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들에 대한 비판도 하고 있다.
설리반의 영화 제작사는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보호 시설에서 가난을 체험하는 설리반의 일거수일투족을 취재하여, 이를 영화의 흥행에 이용하려 한다.
‘설리반의 여행’은 코미디와 드라마의 형식이 이상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영화이다.
슬랩스틱 코미디와 코믹한 이야기들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면서도, 당시 대공황기의 가난한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보여주는 진지함도 엿보인다.
설리반이 가난한 떠돌이로 위장을 하고 거리로 나가기 직전에 설리반의 집사(Robert Greig)가 설리반에게 하는 가난에 대한 일장 연설은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