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케인 (Citizen Kane, 1941)
시민 케인 (Citizen Kane, 1941)
‘시민 케인’은 영화가 나온 지 72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영화 사상 최고의 영화로 평가 받고 있는 영화이다.
‘시민 케인’은 미국 영화 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 AFI)가 1998년에 선정한 “위대한 미국 영화 100
(AFI’s 100 Years…100 Movies)”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새로이 선정한 2007년 10주년 기념판에서도 1위를 차지하였다.
영국 영화 연구소(British Film Institute, BFI)가 간행하는 영화 전문 월간 잡지 ‘Sight & Sound’에서 2012년에 발표한
“영화 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50 (Top 50 Greatest Films of All Time)”에서는 50년만에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 (Vertigo, 1958)’에게 1위 자리를 내주기는 하였지만,
‘시민 케인’은 지금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 영화라는 것이 사라지지 않는 한 – 영화 사상 최고의 영화라는 평가를 계속 받을 영화이다.
“Rosebud!” (로즈버드!)
‘시민 케인’이 영화가 나온 지 72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영화 사상 최고의 영화로 평가 받고 있다는 것만큼이나 놀라운 것은
‘시민 케인’의 제작, 감독, 각본, 주연을 맡은 오슨 웰스가 당시 26세밖에 되지 않은 젊은이였다는 것이다.
당시 5대 영화 제작사 중 하나였던 RKO 라디오 픽처스(RKO Radio Pictures)는 라디오와 연극계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지만 영화계에서는 아직 검증이 되지 않은 젊은 오슨 웰스에게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마음껏 만들어 보라고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오슨 웰스는 허먼 J. 맨키위츠와 함께 ‘시민 케인’의 각본을 썼고, 촬영은 그레그 톨랜드에게 맡겼으며,
자신이 만든 머큐리 극단(Mercury Theatre)의 동료 배우들 – 수잔 알렉산더(Dorothy Comingore)를
연기한 도로시 커밍고어만 외부에서 캐스팅하였다 – 을 캐스팅하였다.
‘시민 케인’에서 오슨 웰스가 연기하는 찰스 포스터 케인(Orson Welles)은 당시 미국의 언론 재벌이었던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를 모델로 한 캐릭터인데, 허스트는 ‘시민 케인’의 제작을 방해하고
상영을 막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썼다. 케인이 허스트가 아님을 암시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정반대로 케인이 허스트임을 암시하기 위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시민 케인’에 허스트의 이름을 언급하는 대사가 나온다.
케인의 죽음을 알리면서 그의 삶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10분 분량의 뉴스 영화가 끝난 직후
잡지 편집장 롤스톤 씨(Philip Van Zandt)가 말한다. “…스크린에서 우리가 본 건 위대한 미국인이야
하지만 그가 포드와 다른 점은 뭘까? 또는, 말이 났으니 말이지, 허스트와는? 존 도우와는?…”
사실 최신 영화들만을 즐기는 오늘날의 관객들이 ‘시민 케인’을 보면 이 영화가 왜 영화 사상 최고의 영화로 평가 받고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민 케인’ 이전과 당시의 유명한 영화들 몇 편만 보아도 ‘시민 케인’이
왜 영화 사상 최고의 영화로 평가 받고 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시민 케인’은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장면에서의 영상 기술과 영화의 이야기 구조가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다. 물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 A Space Odyssey, 1968)’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펄프 픽션 (Pulp Fiction, 1994)’도 그 당시에는 혁명적인 영화이긴 했지만,
그 당시의 다른 영화들과의 차이가 ‘시민 케인’만큼 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 물론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이후 수많은 SF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펄프 픽션’ 이후 ‘펄프 픽션’의 형식을 따라한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 이후의 영화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오늘날의 관객들이 ‘시민 케인’이 왜 영화 사상 최고의 영화로 평가 받고 있는지 의아해 하는 이유도
‘시민 케인’이 오늘날의 영화들에 미친 영향이 너무나 커서 오히려 그 영향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영향을 최신 영화들에서 부지불식간에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슨 웰스와 ‘시민 케인’의 촬영을 맡은 그레그 톨랜드가 ‘시민 케인’에서 영화 촬영 기법 중 하나인 딥 포커스(deep focus)를 사용하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