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빌보드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2017)
쓰리 빌보드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2017)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The Shape of Water, 2017)
‘쓰리 빌보드’는 조금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내용의 영화이다.
하루에 한번씩은 누군가에게 분노를 표출하면서 살고 있고, 특히 분노를 표출할 수 밖에 없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가 ‘쓰리 빌보드’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강간을 당하고 처참하게 살해당한 딸의 엄마인 ‘쓰리 빌보드’의 주인공, 밀드레드(Frances McDormand)는 더더욱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리 빌보드’는 우리들로 하여금 깊은 성찰을 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쓰리 빌보드’는 인간의 희로애락 중 가장 참기 힘들다는 분노와,
분노에 찬 말로 주변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분노로 화를 자초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딸 안젤라(Kathryn Newton)가 강간을 당하고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한 지 7개월이 지나도 범인이 잡히기는 커녕,
사건이 세상의 관심에서 사라지자, 밀드레드는 마을 외곽의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도로 가에 버려진 세 개의 대형
광고판에 도발적인 세 줄의 메시지를 싣는다. “죽으면서 강간을 당했다.”, “그런데 아직도 못 잡았다고?”, “어떻게 된 건가, 윌러비 서장?”
밀드레드의 쓰리 빌보드는 마을의 존경받는 경찰서장 윌러비(Woody Harrelson)를 곤경에 빠뜨린다.
마을 사람들은 밀드레드의 쓰리 빌보드에 반감을 드러내고, 윌러비를 존경하는 경찰관 딕슨(Sam Rockwell)은 쓰리
빌보드의 메시지를 내리라고 밀드레드와, 밀드레드에게 쓰리 빌보드를 대여해 준 광고사의 젊은 사장 레드 웰비(Caleb Landry Jones)를 압박한다.
밀드레드의 쓰리 빌보드는 밀드레드의 분노를 상징한다.
안젤라 사건의 범인이 잡히지 않는 것이 윌러비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윌러비가 췌장암으로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쓰리 빌보드로 인해 아들 로비(Lucas Hedges)가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밀드레드는 쓰리 빌보드의 메시지를 내릴 생각이 전혀 없다.
윌러비가 자살을 했는데도 밀드레드는 쓰리 빌보드의 메시지를 내리지 않는다.
누군가의 방화로 쓰리 빌보드가 불에 타버리자, 분노에 찬 밀드레드는 경찰서에 불을 지른다.
이로 인해 마침 경찰서 안에서, 자살한 윌러비가 남긴 편지를 읽고 있던 딕슨이 심한 화상을 입게 된다.
밀드레드는 자신의 분노와 쓰리 빌보드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만 안겨 주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빌보드 아래 꽃을 심던 밀드레드가 갑자기 나타난 새끼 사슴에게 하는 대사는 딸은
살해당하고 범인은 잡히지 않는 정의롭지 못하고 불합리한 세상에 대한 분노와 함께, 쓰리 빌보드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에 괴로워하는 밀드레드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대사이다.
“신도 없고 세상은 텅 비어 있으니, 우리가 서로에게 무슨 짓을 하든 그게 대수로운 일이겠어? 아니길 바라지만.”
‘쓰리 빌보드’에서 밀드레드 못지않게 분노를 가슴속 깊이 품고 사는 인물이 바로 경찰관 딕슨이다.
다혈질적이고 인종주의자이기도 한 딕슨은 윌러비의 자살에 분노하여 레드
웰비의 사무실을 찾아가 레드 웰비를 구타하고 2층 창밖으로 던져 버린다.
윌러비는 자살하기 전, 딕슨에게 진심 어린 충고의 편지를 남긴다.
윌러비의 편지는 관객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나 다름없다. “…제이슨, 자넨 좋은 경찰이 될 자질이 있다고 봐.
왜 그런지 알아? 자네도 본심은 좋은 사람이니까. …그런데 자넨 화가 너무 많아.
아버지 돌아가신 후, 어머니 돌보느라 힘들어서 그런 거 알아.
하지만 그렇게 증오심이 크면, 내가 알기론 자넨 형사가 되고 싶어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형사가 될 수 없어.
형사가 되려면 뭐가 필요한 지 알아? 내가 이런 말 하면 얼굴을 찡그리겠지만,
형사가 되려면 사랑이 필요해. 사랑에서 차분함이 나오고 차분함에서 생각이 나오지.
뭔가를 찾아내려면 생각이 필요해, 제이슨. 그것만 있으면 돼. 총도 필요 없고, 당연히 증오심도 필요 없어.
증오심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어. 하지만 차분함은 해결할 수 있지.
그리고 생각을 하면 해결할 수 있어. 한번 해 봐. 변화를 위해서 한번 해 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