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전투 (La Bataille d' Alger, 1966)

알제리 전투 (La Bataille d’ Alger, 1966)

알제리 전투 (La Bataille d’ Alger, 1966)

알제리 전투 (La Bataille d’ Alger, 1966)

언더 더 스킨 (Under the Skin, 2014)

‘알제리 전투’의 마지막에서, 프랑스군이 항복을 거부한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ont de Lib ration Nationale, FLN)의 마지막 남은 지도자

알리 라 푸앙트(Ali La Pointe, Brahim Haggiag)의 은신처를 폭파시킨 후,

프랑스 장군이 알제에서 FLN은 완전 소탕되었다고 말하자, 옆에 있던 대령이 말한다. “알제가 알제리는 아닙니다.”

그러자 장군이 말한다. “물론이지. 하지만 우선은 알제에 만족하자고.

산에서는 일이 훨씬 수월하지.”

프랑스 장군과 대령의 대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한국 제목인 ‘알제리 전투’는 “알제 전투”로 수정되는 것이 맞다.

‘알제리 전투’의 원제목인 ‘La Bataille d’ Alger’과, 영어 제목인 ‘The Battle of Algiers’에서, “Alger”와 “Algiers”는 알제리(Algeria)의 수도인 “알제”를 일컫기 때문이다.

‘알제리 전투’는 1954년부터 8년 동안 프랑스를 상대로 한 알제리의 독립 전쟁(알제리 전쟁)에서,

1954년에서 1957년 사이에 알제에서 FLN이 프랑스 식민 통치에 대항했던 실화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재구성한 영화이다.

프랑스 장군의 생각도 틀렸다. 1957년 10월, 항복을 거부한 알리가 폭사하면서 알제 전투는 프랑스의 승리로 종결되지만,

에필로그에서 기자의 내레이션을 통해 설명하듯 그 후 2년 동안 산에서 전투가 벌어지긴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잠잠했었는데, 1960년에 다시 알제리 민중의 봉기가 일어나고, 마침내 1962년 알제리는 독립을 쟁취한다.

프랑스는 알제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알제리 전쟁에서는 패전하고 만다.

이탈리아와 알제리 합작 영화인 ‘알제리 전투’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이탈리아 공산당에 참여했었고,

이탈리아 밀라노(Milano)에서 반파시스트 레지스탕스의 지도자로 활동했었던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질로 폰테코르보 감독이 연출과,

프랑코 솔리나스와 함께 각본과, 엔니오 모리꼬네와 함께 음악을 담당하고,

실제로 알제 전투 당시에 FLN의 지도자였던 야세프 사디가 제작을 담당한 영화이다.

야세프 사디는 ‘알제리 전투’에서 자신을 모델로 한 FLN의 지도자 자파(Saadi Yacef) 역으로 영화에 출연까지 한다.

‘알제리 전투’는 전쟁과 정치적 활동 경험이 있는 영화감독과 영화제작자가 만든 전쟁 영화이자 정치 영화이다.

실화를 재구성한 영화의 리얼리티를 위해 고감도 필름을 사용하여 촬영한 ‘알제리 전투’는 다큐멘터리나 뉴스 영화를 보는 듯 사실감이 넘치는 영화이다.

적은 조명 하에서도 촬영할 수 있어, 다큐멘터리나 뉴스 영화를 촬영할 때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고감도 필름은 입자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이미지 선명도가 떨어져 화질이 열화되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고감도 필름의 시각적 결함이 미적 장치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특별히 기록 영화적

감성을 표현하는 데 더없이 유리하다. ‘알제리 전투’는 흑백 대비가 강렬하고 영상의 선명도가 낮아, 마치 실제 사건을 기록한 듯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는데,

이 반응이 너무나 컸던 나머지, 이 영화에 다큐멘터리나 뉴스 영화에서 가져온 필름은 “단 1피트도 없다”고 공표해야 했을 정도였다.

질로 폰테코르보 감독은 영화의 리얼리티를 위해 ‘알제리 전투’를 알제의 실제 장소에서 촬영하였으며, 촬영 현장에서 알제리 국민들을 엑스트라로 동원하였다.

‘알제리 전투’에 출연하는 배우들도 마티유 대령(Jean Martin)을 연기하는 프랑스 배우 장 마르탱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전문 배우들이다.

당시 주로 연극 무대에서 배우 활동을 한 장 마르탱도 얼굴이 잘 알려진 배우는 아니었다.

하지만 장 마르탱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참여했었고,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 공수 부대에 복무했었고,

1960년에 프랑스의 지식인 121명이 서명한 알제리 전쟁을 반대하는 선언문(Manifeste des 121, 121인 선언)에 서명을 했다는 이유로 프랑스 국립민중극장에서 해고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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