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얼 서스펙트 (The Usual Suspects, 1995)
유주얼 서스펙트 (The Usual Suspects, 1995)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When Harry Met Sally 1989)
캘리포니아주 산 페드로의 부두에서 선박이 폭발하고 27명이 사망한 사건의 두 명의 생존자 중 한 명인
절름발이 버벌(Kevin Spacey)이 수사관 데이브 쿠얀(Chazz Palminteri)에게 부두 사건의 배후 인물이자,
범죄자들도 두려워하는 베일에 가려진 전설 속 악마 카이저 소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말한다.
“악마가 쓴 가장 뛰어난 속임수는 세상이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만든 것이지….그리고 그런 식으로 그는 사라졌어.”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유주얼 서스펙트’는 영화 자체가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사기극이다.
관객들은 영화가 끝난 후에 영화에게 완전히 속았다는 생각에 허탈한 기분마저 든다.
난 ‘유주얼 서스펙트’를 볼 때마다 영화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해 영화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영화 보기를 중단하기를 여러 번 반복했었다.
그러다가 아주 한가한 날 큰맘 먹고 영화를 끝까지 보았는데,
영화가 끝나자마자 곧장 처음부터 다시 보았다. ‘유주얼 서스펙트’는 영화의 기막힌 마지막 반전으로 관객들을
거의 혼란 속에 빠트리는데, 관객들은 영화의 이야기와 마지막 반전을 이해하기 위해 영화가
끝나자마자 저절로 곧장 처음부터 다시 보게 된다. ‘유주얼 서스펙트’는 적어도 두 번은 봐야 확실하게 이해가 되는 영화이다.
‘유주얼 서스펙트’의 이야기는 대부분 부두 사건에 대한 버벌의 진술 – “버벌(Verbal)”의 사전적 의미가 “말의”, “구두의”이다 – 을 통해 전개된다.
‘유주얼 서스펙트’는 버벌의 진술을 통하여 관객들을 속이는데, ‘유주얼 서스펙트’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버벌의
진술에서 어떤 부분이 사실이고 허구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버벌의 진술은 지방 검사 앞에서의 진술과 데이브 쿠얀 앞에서의 진술로 나뉠 수 있다.
버벌은 지방 검사 앞에서 부두 사건이 일어나기 6주 전에 뉴욕시 퀸즈 외곽에서 총기를 실은 트럭이
털린 사건으로 자신과 다른 4명의 범죄자들 – 맥매너스(Stephen Baldwin), 하크니(Kevin Pollak),
펜스터(Benicio Del Toro), 키튼(Gabriel Byrne) – 이 체포되어 뉴욕 경찰의 조사를 받은 일에 대해 진술을 하는데,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이 진술은 사실인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 뉴욕 경찰의 억측으로 억울하게 체포된 5명의 범죄자들은 결국 무혐의로 풀려난다.
2시간 후 보석을 앞두고 경사 제프 래빈(Dan Hedaya)의 사무실로 소환된 버벌은 데이브 쿠얀 앞에서 5명이 무혐의로
풀려난 시점부터 부두 사건이 일어난 시점까지 벌어졌던 일에 대해 진술을 하는데,
이 진술은 버벌이 데이브 쿠얀과 관객들을 속이기 위해 꾸며낸 것이다. 물론 모든 진술이 다 꾸며낸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5명이 총기 트럭 강탈 사건과 무관한 자신들에게 혐의를 씌운 뉴욕 경찰에 복수할 계획을 모의하고,
결국 부패 경찰관들이 밀수업자(Paul Bartel)와 거래하는 현장을 급습해 보석과 돈을 강탈했다는 진술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유주얼 서스펙트’의 마지막 반전에 의하면 레드풋이나 코바야시(Pete Postlethwaite)와 관련된 모든 진술은 확실히 버벌이 꾸며낸 것이다.
‘유주얼 서스펙트’의 마지막에, 선박의 갑판 위에 쓰러진 키튼이 정체불명의 남자가 쏜 총을 맞고 죽는 상황이
버벌의 진술과 데이브 쿠얀의 추리에 따라 다르게 묘사되는데, 한 살인 사건이 살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살인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진술에 따라 다르게 묘사되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 (羅生門, 1950)’을 연상시킨다.
버벌은 키튼을 죽인 정체불명의 남자가 카이저 소제라고 진술을 하는데, 데이브 쿠얀은 키튼이 카이저 소제라고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