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레스트 검프 (Forrest Gump, 1994)
포레스트 검프 (Forrest Gump, 1994)
‘포레스트 검프’는 포레스트 검프(Tom Hanks)라는 이름을 가진, IQ가 75밖에 안 되는 한 저능아의 전기(?) 영화이다.
‘포레스트 검프’는 포레스트 검프의 인생만큼이나 독특한 영화이다.
‘포레스트 검프’는 포레스트 검프의 인생을 통하여 관객들에게 어떤 의미 있는 메세지를 전달하려는 영화는 결코 아니다.
포레스트 검프는 다른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기에는 너무 멍청하다.
그렇다고 저능아라는 핸디캡을 선함과 순수함으로 극복하고 인생에서 성공을 하는 인간 승리의 감동적인 영화도 아니다.
그러기엔 포레스트 검프의 인생운이 너무 좋다. 너무 좋아서 포레스트 검프의 인생은 현실이 아니라 거의 판타지에 가깝다.
포레스트의 엄마(Sally Field)는 저능아에다 다리까지 불편한 아들(Michael Conner Humphreys)에게 넌 남들과 다르지 않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준다.
그러나 달랐다. 그리고 그의 인생은 남달랐다.
포레스트의 남다른 인생은 미국 역사와도 함께 한다. 미국 역사에서 유명한 정치적, 문화적 사건들의 중심에는 포레스트가 있다.
포레스트의 집에 하숙을 한 한 청년(Peter Dobson)은 포레스트가 다리에 버팀대를 낀 채 춘 춤을 전수(?)받아, 후에 로큰롤의 제왕(The King of Rock and Roll)이 된다.
포레스트의 인생은 포레스트의 다리가 기적적으로 나으면서 더욱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포레스트는 다리의 버팀대를 벗어버리자마자 바람처럼 달릴 수 있게 되고, 이 덕분에 풋볼 선수로 뽑혀 대학에까지 진학한다.
포레스트는 인종차별 정책 철폐에 반대하여 알라바마 대학교에서 두 흑인 학생의 입학을 막으려는 알라바마 주지사
조지 월레스(George Wallace)와, 인종차별 정책을 철폐하려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투입한 알라바마주 방위군 사령관
헨리 그레이엄(Henry Graham) 장군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 중계방송되고 있는 현장에 나타나
두 흑인 학생 중 한명이 떨어뜨린 책을 주워 친절하게 그 학생에게 건네주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도 한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포레스트는 전미 최고의 아마추어 풋볼 선수로 뽑혀 백악관에 초청되어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난다.
대학 졸업 후에는 자원 입대하여 베트남전에 참전, 전멸 직전의 위기 상황에 놓인 소대와 소대장 댄 테일러 중위(Gary Sinise)를
구하는 공을 세워 또다시 백악관에 초청되어 린든 존슨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는다.
포레스트는 탁구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미국 탁구 대표팀 선수로 차출되고, 미국을 대표하여 중국을 방문하는 첫 미국인이 된다.
이로 인해 유명 인사가 된 포레스트는 존 레논과 함께 딕 카베트 쇼(Dick Cavett Show)에 출연하기도 하고, 백악관에 또 초청되어 리차드 닉슨 대통령을 만나기도 한다.
포레스트는 리차드 닉슨 대통령을 사임하게 만든 워터게이트 사건을 적발(?)하기도 한다.
제대 후에는 베트남에서 자신의 품에 안겨 죽어간 동료 버바(Mykelti Williamson)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댄 테일러 중위와 함께 새우잡이 사업을 시작하고, 운 좋게도 버바 검프 새우 회사를 세울 정도로 큰 돈을 번다.
그리고 댄 테일러 중위가 새우잡이 사업으로 번 돈으로 애플 컴퓨터사에 투자를 해 더 큰 돈을 번다.
평생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부자가 된 포레스트는 3년 2개월 14일 16시간동안 미국 전역을 뛰어다녀 또다시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이렇듯 화려한 인생을 살아왔지만 정작 IQ가 75인 포레스트는 자신의 인생에서 자신에게 또는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한다.
알라바마 주지사와 알라바마주 방위군 사령관이 대치하고 있는 학교 현장에 나타나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지만
알라바마 주지사와 알라바마주 방위군 사령관이 무엇 때문에 대치하고 있는지도 몰랐고, 풋볼 선수로 뽑혀 대학에까지 진학했지만
풋볼 경기 규칙조차도 몰랐다. 베트남전에서 누구와 싸웠는지, 중국에는 왜 가게 되었는지
댄 테일러 중위가 투자한 애플사가 어떤 회사인지 – 포레스트는 과일 회사로 알고 있다 – 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