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눈 (High Noon, 1952)
하이 눈 (High Noon, 1952)
미국 서부 뉴멕시코의 작은 마을 헤이들리빌의 어느 일요일 아침, 보안관 임기를 마친 윌 케인(Gary Cooper)과 평화를
애호하는 퀘이커 교도인 에이미(Grace Kelly)의 결혼식이 진행 중이다.
이때 5년 전 윌 케인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간 악당 프랭크 밀러(Ian MacDonald)가 사면되어
정오에 마을에 도착하는 기차를 타고 있다는 전보가 날아든다. 프랭크 밀러의 패거리 세 명도 역에서 프랭크 밀러가 탄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윌 케인은 프랭크 밀러 일당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동료, 친구, 마을의 고관들 모두 윌 케인의 요청을 거절한다.
결국 윌 케인은 혼자서 네 명의 악당들과 대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하이 눈’의 가장 큰 특징은 영화 속 이야기의 진행 시간이 실제 영화의 상영 시간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다.
영화 중간중간에 정오가 다가옴을 보여주는 시계가 영화가 끝나가는 시간도 함께 알려주는 셈이다.
이로 인해 윌 케인이 정오가 다가옴에 따라 느끼는 긴장과 두려움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는 다른 서부 영화와는 달리, 마지막 10여분을 제외하고는
총 쏘는 장면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윌 케인의 심리 상태를 중심으로 시종 일관 높은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긴장감 속에서 ‘하이 눈’은 시민의 책임과 의무에 대한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에서 마을 사람들은 비겁하고 어리석고 겁 많은 사람들로 묘사되고 있다.
자기가 사는 마을이 위험에 처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일이 아닌 양 방관자적 자세만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윌 케인은 보안관으로서, 그리고 마을의 한 사람으로서 마을을 지키려고 애쓰는 책임있는 시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웅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자기의 책임을 완수하고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마을
사람들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프랭크 밀러 일당과 맞서는 용기있는 시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Don’t try to be a hero. You don’t have to be a hero, not for me.”
(영웅이 되려고 하지 말아요. 날 위해서 영웅이 될 필요는 없어요.)
“I’m not trying to be a hero. If you think I like this, you’re crazy.”
(영웅이 되려고 하는게 아니오. 내가 원해서 하는 것도 아니오.)
프랭크 밀러 일당과의 결전을 앞두고 유서를 작성하고 있는 윌 케인의 얼굴 표정에는 공포가 역력히 서려 있다.
‘하이 눈’은 미국 대통령들이 가장 즐겨 보았던 영화라 하는데, 특히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임기 중 17번이나 이 영화를 보았다 한다.
아마도 프랭크 밀러 일당과의 결전을 앞둔 윌 케인이 느끼는 고독과 두려움의 심정이 나라의 중대사에서
혼자 결단을 내려야 할 때 대통령이 느끼는 심정과 같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프랭크 밀러 일당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윌 케인이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보안관 배지를 땅에 던져버리고 말없이 떠나가는데
마을을 구하고도 마을 사람들에게 영웅 대접도 못받고 떠나는 윌 케인의 공허한 심정이 국정 운영을 잘해도
임기가 끝나면 말없이 떠나야 하는 대통령의 허무한 심정과도 같기 때문일 것이다.
‘하이 눈’은 당시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 전반에 불어닥친 “빨갱이 사냥” 매카시즘에 반발하여
만들어진 영화라는 비평을 받았는데, ‘하이 눈’의 각본을 쓴 칼 포어맨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할리우드와 사회로부터 탄압받고
소외당한 소수의 영화인, 정치인, 지식인들을 윌 케인에, 블랙리스트에 오를까 두려워 매카시즘에 반론조차 제기하지 못하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고통받고 있는 동료들을 방관하기만 한 다수의 영화인, 정치인, 지식인들을 마을 사람들에 비유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