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Cleo de 5 a 7, 1962)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Cleo de 5 a 7, 1962)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Cleo de 5 a 7, 1962)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Cleo de 5 a 7, 1962)

중경삼림 (重慶森林, 1994)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는 프랑스의 세계적인 여성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한 프랑스 영화이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영화감독 데뷔작인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

(La Pointe Courte, 1956)’에 이은 두 번째 연출작인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는 아녜스 바르다 감독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이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는 이틀 전 병원에서 의료 검사를 받고 자신이 암에 걸린 것이 아닐까 의심하며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젊은 여가수 플로렌스 클레오 빅투아르(Corinne Marchand)가 6월 21일 화요일 저녁에 나오는 의료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게 되고, 이 과정 중에 주위의 세계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파리에서 만들어진 가장 아름다운 영화”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가 나온 1962년은 1950년대 후반에 시작된 프랑스의 영화 운동 누벨바그(Nouvelle Vague)가 절정에 이른 때였다.

누벨바그는 새로운 물결(New Wave)이란 뜻의 프랑스어로, 주제와 기술상의 혁신을 추구했던 이 운동은 무너져 가는 프랑스 영화 산업에 대한 반동으로 형성됐다.

이 운동의 원동력은 소그룹 영화 마니아들로부터 나왔는데,

그들 대부분은 프랑스 영화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 (Cahiers du Cinema)’에 글을 기고하며 경력을 시작했으며,

특히 잡지의 발행인이었던 영화 비평가 앙드레 바쟁(Andre Bazin)의 영화 비평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프랑수아 트뤼포(Francois Truffaut), 클로드 샤브롤(Claude Chabrol), 장 뤽 고다르, 에릭 로메르(Eric Rohmer),

자크 리베트(Jacques Rivette) 등은 기존의 안이한 영화 관습에 대항하는 글을 썼고, 좀 더 개인적인 방식의 영화 제작,

즉 감독의 개인적인 영감과 비전을 투여하는 방식과 스타일을 논설했다.

이들은 영화 비평가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전통을 부정하는 혁신적인 영화 만들기에 직접 뛰어들었다.

누벨바그에 동참하면서도 ‘까이에 뒤 시네마’와는 관련이 없는 아녜스 바르다 감독을 비롯하여,

크리스 마커(Chris Marker), 알랭 레네(Alain Resnais),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남편인 자크 드미(Jacques Demy)

등은 좌안파(Rive Gauche)로 분류되는데, 좌안파는 문학에서의 누보로망(Nouveau Roman) 운동에 깊이 연결되어 있었으며,

정치적으로 좌파에 속했고, 누벨바그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서로의 영화 작업에 긴밀히 협력했다.

좀 더 유명하고, 재정적으로도 좀 더 성공한 ‘까이에 뒤 시네마’ 출신의 우안파(Rive Droite)는 좌안파와 대립적이지 않았고, 좌안파의 영화들을 지지했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에 장 뤽 고다르가 출연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는 영화 속 영화라고 할 수 있는 5분짜리 단편 무성 영화

‘맥도날드 다리의 연인들 (Les Fiances du Pont Mac Donald, 1961)’을 보여 준다. 클레오가 친구인 도로시(Dorothee Blank)를 따라

도로시의 남자 친구인 라울이 일하는 영화관을 방문했을 때, 라울이 도로시와 클레오에게 ‘맥도날드 다리의 연인들’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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