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어린 설득 (Friendly Persuasion, 1956)
우정어린 설득 (Friendly Persuasion, 1956)
사랑은 비를 타고 (Singin’ in the Rain, 1952)
내가 중학생, 고등학생일 때, 지금의 EBS의 전신인 KBS 3TV에서 일요일 정오마다 방송되는 ‘세계 명작 감상’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DVD는 물론이고 비디오도 없던 당시에는 이 프로그램이 오래된 명화들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우정어린 설득’은 이 프로그램의 단골 메뉴였는데, ‘세계 명작 감상’에 대한 추억을 떠올릴 때마다 이 영화가 생각이 날 정도로 정말 자주 방송되었던 영화이다.
‘우정어린 설득’은 ‘로마의 휴일 (Roman Holiday, 1953)’과 ‘벤허 (Ben-Hur, 1959)’로 유명한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작품으로, Jessamyn West의 소설 ‘The Friendly Persuasion’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우정어린 설득’은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2년, 인디아나 남부의 한 퀘이커 교도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평화주의자들로 유명한 퀘이커 교도들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영화 또한 등장 인물들간의 갈등이나 이야기의 긴장감 하나 없이 잔잔하게, 굉장히 평화롭게 전개된다.
영화의 극적 구성을 위한 이렇다 할 특별한 이야기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퀘이커 교도 가족의 살아가는 단순한 이야기들을 따뜻한 유머만으로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가는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연출력은 거장의 연출력다운 탁월함을 보여 주고 있다.
‘우정어린 설득’은 개신교의 한 종파인 퀘이커를 단지 영화의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위한 하나의 작은 설정 정도로 영화에 끌어들인 것이 아니라
영화의 이야기 자체가 퀘이커의 이야기이다.
독실한 퀘이커 교도인 엄마 일라이자(Dorothy McGuire)와 덜(?) 독실한 나머지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퀘이커의 종교관과 퀘이커 교도의 생활을 꽤 자세하게 보여 주고 있다.
‘Friendly Persuasion’이라는 영화의 제목부터가 퀘이커적이다. 영화를 보면 영화의 제목과 영화의 이야기가 그다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퀘이커의 원래 명칭이 “Religious Society of Friends(종교 친우회)”라는 것과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퀘이커 교도들은 스스로나 타인을 “Friends”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면 이 영화의 제목의 의미와 의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Friendly Persuasion’은 퀘이커의 정신, 특히 이 영화의 주제이기도 한, 퀘이커의 평화주의와 휴머니즘의 설득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한 종파의 이름이 되었지만, 원래 “퀘이커”는 일반인들이 퀘이커 교도들을 조롱하기 위해 불렀던 이름인데
퀘이커 교도들은 이러한 조롱도 겸손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로 스스로 자신들을 “퀘이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퀘이커 교도들의 타인에 대한 겸손은 작은 표현에서도 나타나는데, 영화의 초반부에 제스(Gary Cooper)가 길을 묻는
남자와 나누는 대화에서도 언급이 되지만, 퀘이커 교도들은 상대방을 지칭할 때 “you(당신)” 대신 “thee(그대)”를, “thank you(감사합니다)”도 “thank thee”라고 표현한다.
퀘이커는 누구에게나 내면의 빛(하느님의 영)을 가지고 있으며, 하느님과의 교감은 스스로의 내면에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퀘이커는 개신교의 다른 종파와는 달리 묵상으로 예배를 올리는데
영화에서도 퀘이커와 감리교의 서로 다른 예배 모습을 재미있게 비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영화에서도 보여 주듯, 퀘이커는 모두가 하느님 앞에서는 평등하다고 믿기에 예배를 이끌어가는 사제나 성직자도 따로 두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