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

간디 (Gandhi, 1982)

간디 (Gandhi, 1982)

간디 (Gandhi, 1982)

12명의 성난 사람들 (12 Angry Men, 1957)

‘쥬라기 공원 (Jurassic Park, 1993)’에서 6천 5백만년 전에 지구상에서 멸종된 공룡을 재창조했던

인젠사의 CEO 존 해먼드(Richard Attenborough)는 이보다 11년이나 앞선 1982년에는 공룡보다도

더 크고 위대한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Mohandas Kharamchand Gandhi)의 생애를 재창조했었다.

리처드 아텐버로우 감독이 자신은 영화감독이 되기 이전엔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자신이 영화감독이 된 건 단지 ‘간디’를 만들기 위해서였다라고 할 만큼 ‘간디’의 제작은 리처드 아텐버로우 감독에겐 평생의 꿈이었다.

리처드 아텐버로우 감독은 간디가 남아프리카에서 유색 인종에 대한 인종 차별을 목격하고 적은 글

“It has always been a mystery to me how men can feel themselves honored by the humiliation of their fellow beings.

(어떻게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굴욕을 안겨줌으로서 존경을 받는다고 여기는지 나에게는 항상 불가사의다.)” 에 감명을 받고

간디의 생애를 영화에 담기로 처음으로 마음을 먹은 후 실제로 영화를 만들게 되기까지는 20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다.

그 20년은 리처드 아텐버로우 감독에겐 ‘간디’의 엄청난 제작비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의 시간이었으며

‘하이 눈 (High Noon, 1952)’과 ‘사계의 사나이 (A Man for All Seasons, 1966)’의 프레드 진네만 감독이나

‘콰이강의 다리 (The Bridge on the River Kwai, 1957)’의 데이비드 린 감독에게 ‘간디’의 제작을 넘길 뻔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데이비드 린 감독은 ‘콰이강의 다리’의 촬영을 마치고, 알렉 기네스를 간디 역으로 ‘간디’의 제작을 계획하였으나

‘아라비아의 로렌스 (Lawrence of Arabia, 1962)’의 제작을 위해 ‘간디’의 제작을 포기했다.

간 디(Ben Kingsley)의 암살 장면과 세계 기네스 북에도 오른, 400,000명의, 세계 영화 역사상 최다

인원의 엑스트라가 동원된 간디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되는 ‘간디’는 간디가 젊은 변호사 시절 남아프리카에서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는 시점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간디’는 그 시점에서부터 영국으로부터의 인도의 독립을 위한 비폭력 저항 운동과 인도의 사회

종교, 문화의 통합을 위해 노력한 간디의 일생과 업적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 인물을 다룬 대부분의 영화들은 영화를 위해 그 인물을 다루고 있어 영화의 극적인 구성을 위해

역사를 왜곡하는 경우도 많지만, 간디라는 위인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간디’는 비교적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간디’에는 리처드 아텐버로우 감독의 간디에 대한 진심 어린 존경이 담겨 있다.

간디는 남아프리카에서 인도인의 권리를 위해 싸웠고, 남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는 인도인들의 생활과 의식을 바꾸어 놓았다.

인도로 돌아와서는 인도의 독립을 위해 영국에 대한 비폭력 저항 운동을 전개하고, 자신의 비폭력 저항 운동에도 불구하고

인도인들의 영국인들에 대한 폭력과 살인이 자행되자 단식으로서 비폭력 저항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인도인들에게 관철시킨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한 후, 힌두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종교 분쟁으로 또다시 온 나라가 폭력으로 물들게 되자

간디는 죽음을 무릅쓴 단식으로 서로에 대한 모든 폭력을 중단해줄 것을 전국민에게 호소한다.

리처드 아텐버러우 감독은 이러한 간디의 행적과 그의 정신을 관객들에게 마치 간디의 전기를 읽어주듯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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