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프 픽션 (Pulp Fiction, 1994)
펄프 픽션 (Pulp Fiction, 1994)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 1939)
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을 ‘펄프 픽션’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펄프 픽션’을 보고는 그가 연출한 영화들과 그와 관련된
영화들은 다 찾아 보았을 정도로 ‘펄프 픽션’에 매료되었었다.
‘펄프 픽션’ 이후의 그의 작품들 중 비록 ‘펄프 픽션’을 능가하는 작품을 보지 못했지만,
그의 독특한 작품 세계는 여전히 나로 하여금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만든다.
‘펄프 픽션’을 보고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이 영화를 이런 식으로 만들어도 재미있는 영화가 되는구나였다.
사방에 피가 터지도록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에서도 헛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영화,
영화의 내용과는 전혀 관계없는 쓸데없는 지저분한 대사가 쉴새없이 나오는 영화,
그리고 산만한 이야기 전개 구조. 이 모든 것들이 언뜻 듣기에는 삼류 영화처럼 들리지만
‘펄프 픽션’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정말 신선하고 독특하고 재치가 넘치는 영화였다.
‘펄프 픽션’의 내용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참 곤란하다. 설명할 만한 특별한 내용이 없다.
게다가 살인, 마약, 강간 등을 보여주는 장면들과 욕이 빠지지 않는 대사들은 지저분하기 이를데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이 영화가 예술성을 중요시하는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기존의 다른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아니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펄프 픽션’만의 독특한 영화 형식 때문이다.
‘펄프 픽션’의 독특한 형식은 영화사에서 혁명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획기적이다.
‘펄프 픽션’의 독특함 중 그 첫번째는 ‘펄프 픽션’에서의 사건들이 일어나는 시간의 전개가 한마디로 뒤죽박죽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영화 도입부에 펌프킨(Tim Roth)과 하니 버니(Amanda Plummer)가 식당에서 강도질하는 장면이 영화의 마지막에 또 나온다거나,
부치(Bruce Willis)에게 총을 맞고 죽은 빈센트(John Travolta)가 다음 장면에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영화 도중엔 사건의 전개가 산만하고 헷갈리기도 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쯤 모든 사건들이 기가 막히게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두번째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재치가 번뜩이는 대사다. 대사는 ‘펄프 픽션’의 총 상영 시간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영화의 사건 전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쓸데없는 대사가 대부분이다.
거의 영화 속 인물들끼리 떠들어대는 수다 수준이다. 게다가 대사의 내용은 저속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세상에 저속한 수다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다. 거기에다가 재치있는 말장난까지 합치면 말할 것도 없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이러한 대사들을 영화 속 배우들의 코믹 모드의 연기가 아닌 오히려 진지한 모드의 연기로 처리해 더 큰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예를 들어 쿤스(Christopher Walken)가 어린 부치에게 금시계에 관한 말도 안 되는 일화를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은 폭소를 넘어 황당하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