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강의 다리 The Bridge on the River Kwai 1957
콰이강의 다리 The Bridge on the River Kwai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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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화 세계는 ‘콰이강의 다리’를 분수령으로 크게 변모합니다.
그 이전까지 린은 대자연을 배경으로 웅장한 화면 속에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를 담아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감독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특히, ‘콰이강의 다리’ 이후 등장한 대표작인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닥터 지바고’에서는 사막과 설원을 압도적으로 그려내며 스크린을 가득 채웁니다.
그러나 이 영화 이전의 린은 거대한 자연보다는 인간 관계와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를 중심으로 하는 작품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밀회’, ‘위대한 유산’, ‘올리버 트위스트’ 같은 영화들이 그러합니다.
물론 ‘콰이강의 다리’ 이후의 작품으로 인해 명성을 얻기도 했지만, 일부 비평가들은 이야기의 소소한 매력이 사라졌다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콰이강의 다리’는 웅장함과 함께 소소한 재미도 잘 어우러진 작품입니다.
‘콰이강의 다리’는 제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 영화입니다.
일반적인 전쟁 영화들이 전쟁의 참혹함과 그 광기를 보여주는 반면, 이 영화는 일본군의 포로가 된
영국 장교와 수용소장 사이의 자존심 싸움을 통해 전쟁의 본질과 허무함을 드러냅니다.
영국군 포로들은 ‘콜로넬 보기 행진곡’을 휘파람으로 부르며 수용소에 도착합니다.
사이토 대령은 이들을 방콕과 랭군을 잇는 철도 다리를 건설하는 데 사용하고자 하지만, 원칙주의자
니콜슨 중령은 장교들에게 육체 노동을 시킬 수 없다는 제네바 조약을 이유로 이를 거부합니다.
이로 인해 사이토와 니콜슨 간의 갈등은 극단으로 치닫게 됩니다.
영화는 이러한 자존심 싸움 속에서 양측 모두 점차 이성을 잃어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니콜슨 중령은 이제 전쟁 상황을 잊고 다리에 집착하며, 심지어 병동에 있는 환자들까지 공사에 끌어들입니다.
결국, 자신들이 적국에 헌신하는 게 아니냐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전후 사람들이 이 다리를 영국군이 지었다고 기억할 것이라며 자신만만해 합니다.
미국인 셰어스와 클립튼 소령은 두 사람의 싸움을 광기로 보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그러나 운명은 셰어스를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프랑스 소설가 피에르 볼레의 소설로, 그의 또 다른 작품 ‘혹성탈출’ 역시 영화화된 적이 있습니다.
‘콰이강의 다리’의 각본을 쓴 마이클 윌슨과 칼 포어맨은 당시 매카시즘 때문에 블랙 리스트에 올라 이름 없이 작업했으며, 수상도 뒤늦게 이루어졌습니다.
니콜슨 중령 역의 알렉 기네스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하야카와 세스수에는 후보에 올랐습니다.
총 7개 부문에서 아카데미상을 받은 이 영화는 전쟁의 비극뿐 아니라 인간의 융통성과 자만에 대해 경종을 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