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이야기 (東京物語, 1953)
동경이야기 (東京物語, 1953)
버드맨 (Birdman or (The Unexpected Virtue of Ignorance), 2014)
개인적으로 일본 영화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일본 영화인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고, 아는 배우는 단 한 명도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본 일본 영화도 한국에서 한때 일본 영화의 인기가 한창일 때에 본 ‘러브레터 (Love Letter, 1995)’와
‘쉘 위 댄스 (Shall we ダンス?, 1996)’, ‘철도원 (鉄道員, 1999)’, 단 세 편뿐이다.
너무 오래 전에 봐서 영화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 세 편의 영화를 볼 당시에 세 영화가 굉장히 섬세하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본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동경이야기’는 일본 영화의 섬세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동경이야기’의 이야기와 영상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동경이야기’는 단순하지만 심오한 영화의 이야기와, 단순하지만 깊이가 있는 영상으로 관객들에게 크나큰 감동을 주는 영화이다.
‘동경이야기’는 영국 영화 연구소(British Film Institute, BFI)가 간행하는 영화 전문 월간 잡지
‘Sight & Sound’에서 2012년에 발표한 “영화 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50 (Top 50 Greatest Films of All Time)”에서
‘현기증 (Vertigo, 1958)’과 ‘시민 케인 (Citizen Kane, 1941)’에 이어 3위를 차지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영화이다.
일본 영화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 감독 역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과 함께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일본 영화 감독이다.
‘동경이야기’의 이야기는 이보다 더 단순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하다.
동경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오노미치에서 막내딸 교코(香川 京子, Kyoko Kagawa)와 함께 살고 있는 노부부
히라야마 슈키시(笠 智衆, Chishu Ryu)와 토미(東山千栄子, Chieko Higashiyama)가 동경에서 살고 있는
자식들과 손자들을 보기 위해 동경으로 여행을 떠난다. 동경 변두리의 병원 의사인 장남 히라야마 코이치(山村 聰, So Yamamura)와,
미용실을 운영하는 장녀 가네코 시게(杉村 春子, Haruko Sugimura)는 바쁜 일상 때문에 오랜만에 자신들을 보러 동경까지 온 노부모를 소홀히 대한다.
노부모를 위한 시간을 내지 못해 노부모에게 미안한 코이치와 시게는 노부모를 아타미 온천으로 여행을 보내 드리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아타미 온천에 여행을 온 노부부는 밤새 시끄럽게 노는 젊은 사람들 때문에 편안하게 쉬지도 못하고 결국 예정보다 빨리 동경으로 돌아온다.
노부부는 자식들에게 서운함을 느끼면서도 더이상 폐를 끼치기 싫어 서둘러 오노미치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오노미치로 돌아온 토미가 여독으로 앓아눕고,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자식들이 오노미치를 찾는다.
결국 토미는 세상을 떠나고, 자식들은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각자의 삶을 위해 홀몸이 된 아버지를 남겨 두고 서둘러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동경이야기’는 노부부의 동경 여행을 통해 전후 일본의 변화한 사회상과 전통적인 가족의 붕괴를 이야기한다.
시게가 오빠 코이치의 두 아들 미노루(村瀬 襌, Zen Murase)와 이사무(毛利 充宏, Mitsuhiro Mori)를 코이치의 집에 막 도착한 노부모에게 데리고 가 말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시란다.”
이 장면은 미노루와 이사무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처음 볼 정도로 가족 간 왕래가 오랫동안 없었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미노루와 이사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앞에서 버릇없이 군다.
할머니가 귀찮다는 듯 대답도 하지 않는 이사무를 보며 혼잣말을 하는 토미의 모습이 참 처량해 보인다.
“이사무야,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아버지처럼 의사가 되고 싶니? 네가 의사가 됐을 때 내가 살아 있을지 모르겠구나.”
아타미 온천에 여행을 온 노부부는 밤새 시끄럽게 노는 젊은 사람들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젊은 사람들이 노는 방 앞에 어지럽게 놓여진 슬리퍼와 노부부의 방 앞에 가지런하게 놓여진
노부부의 슬리퍼를 보여주는 장면은 전후 일본의 변화한 사회상을 암시해 주는 장면이다.
하지만 ‘동경이야기’가 단순히 전후 일본의 변화한 사회상과 전통적인 가족의 붕괴만을 이야기하는 영화라면,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영화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동경이야기 는 어느 한 시대에 국한된 이야기의
영화가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인생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이다. 친자식들은 동경에 온 노부모를 소홀히 대하지만,
전쟁통에 남편을 잃고 외롭게 혼자 살고 있는 둘째 며느리 노리코(原 節子, Setsuko Hara)만은 시부모인 노부부에게 정성을 다한다.
코이치와 시게가 노부모를 소홀히 대하는 건 이들이 불효자이기 때문은 절대로 아니다.
인생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 언니와 오빠들에게 불만을 터뜨리는 교코에게 노리코가 말한다.
“…자식들은 크면 부모의 품에서 떨어지게 되죠. 여자도 시게와 같은 나이가 되면 부모와는 별도로 그녀 자신만의 인생이 있죠.
그러니 너무 서운해 하지 말아요. 그들도 돌보아야 할 각자의 인생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