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의 출격 (Twelve O’Clock High, 1949)
정오의 출격 (Twelve O’Clock High, 1949)
선라이즈 (Sunrise: A Song of Two Humans, 1927)
1942년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인 때, 영국 아치베리에 주둔하고 있는 미 제8 공군 918 연대의 사령관
대븐포트 대령(Gary Merrill)은 계속되는 비행과 전투로 부대원들은 지쳐가는데 정밀 폭격을 위해
고도를 2,700km로 더 낮추어 적의 주요 시설들을 파괴하라는 상부의 지시에 불가능한 작전이라며 친구이자 공군 사령관
보좌관인 새비지 장군(Gregory Peck)을 찾아간다.
대븐포트 대령은 새비지 장군에게 군인들을 머릿수로만 여기는 상부를 비난하고,
새비지 장군은 감정적인 대븐포트 대령에게 불안을 느낀다.
결국 공군 사령관 프리차드 장군(Millard Mitchell)은 대븐포트 대령을 전출시키고 그 자리에 새비지 장군을 배속시킨다.
부대에 도착한 새비지 장군은 직급을 조정하고 장교 클럽을 폐쇄하는 등 군기를 새롭게 다진다.
그러나 과도한 비행에 따른 스트레스와, 정신적 지주였던 대븐포트 대령의 부재로 부대원들의 불만은 커져 가고,
급기야 전 부대원들이 전속을 신청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하지만 새비지 장군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부대원들의 훈련에 함께 동참하면서 부대원들의 사기를 진작시켜 나간다.
‘정오의 출격’의 원제목은 ‘Twelve O’Clock High’인데, 누가 번역을 한 건지는 몰라도 ‘정오의 출격’으로 번역한 것은 참 어이가 없다.
“Twelve O’Clock High”는 시간이 아니라 적기가 있는 위치를 가리키는 말로, 번역하면 “12시 방향 위”이다.
즉 적기가 정면 위에 있다는 뜻이다. 12시 방향 위는 ‘정오의 출격’에 나오는
미 폭격기 B-17이 적기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에 가장 취약한 방향이기도 하다.
물론 영화를 보면 원제목 ‘Twelve O’Clock High’도 영화의 이야기와 그렇게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정오의 출격’의 후반부에 독일군과의 고공전이 잠깐 나오기는 하지만, 영화는 독일군과의 전투보다는
새비지 장군이 부대의 사령관으로서 어떻게 부대를 이끌고 나가는지, 어떻게 부대원들의 사기를 진작시켜 나가는지,
새비지 장군의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새비지 장군의 리더십은 대븐포트 대령의 리더십과 서로 대비된다.
대븐포트 대령이 자상한 아버지와 같다면, 새비지 장군은 엄격한 아버지와 같다.
대븐포트 대령은 임무보다는 부대원들을 먼저 생각하지만, 새비지 장군은 군율로 부대원들을 다스린다.
그렇다고 해서 새비지 장군이 부대원들을 단지 머릿수로만 여기는 것은 아니다.
척추 골절에도 불구하고 3번이나 출격을 하고 결국 병원에 누워 있는 벤 게이틀리 중령(Hugh Marlowe)을 찾아가 위로하는 장면은
‘정오의 출격’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다.
대븐포트 대령과 새비지 장군은 리더십의 스타일이 다를 뿐 부대원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같다.
대븐포트 대령과 새비지 장군 모두를 보좌한 스토발 소령(Dean Jagger)이 콥 소령(John Kellogg)에게 말한다.
“자네 혹시 아나? 새비지와 대븐포트가 다른 점은 새비지가 키만 요만큼 더 클 뿐이라네.”
‘정오의 출격’은 대븐포트 대령과는 다른 새비지 장군의 리더십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영화는 아니다.
‘정오의 출격’은 명화로 평가받을 만큼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도 아니다.
‘정오의 출격’은 새비지 장군과 부대원들의 영웅적인 활약을 다룬 오락 영화에 가깝다.
‘정오의 출격’은 “대낮 정밀 폭격을 위해 용기 있는 행동을 한 미국인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
그들은 1942년 가을, 유럽에서 싸운 유일한 미국인들이었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의 이야기는 1949년 다시 아치베리를 찾은 스토발 소령의 회상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자막의 의도대로 유럽에서 싸운 미국인들을 기리기 위한 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