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디 히트 (Body Heat, 1981)
보디 히트 (Body Heat, 1981)
빌리 와일더 감독의 ‘이중 배상 (Double Indemnity, 1944)’은 치명적인 매력으로 자신은 물론 주변인까지 파멸로 몰아가는 팜므 파탈이 등장하는 필름 누아르(film noir)이다.
남편을 살해하고 보험금을 타낼 음모를 품고 있는, 디트리히슨 씨(Tom Powers)의 젊은 아내 필리스(Barbara Stanwyck)는
35세의 미혼의 보험 설계사 월터 네프(Fred MacMurray)를 유혹하여 월터로 하여금 남편을 살해하게 만든다.
여자에게 남자를 유혹하기 위한 가장 큰 무기는 섹스다.
하지만 ‘이중 배상’ 당시에는 검열 때문에 영화에서 섹스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를 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중 배상’에서는 월터의 아파트에서 소파에 누워 담배를 피고 있는 월터와,
월터의 옆에서 화장을 고치는 필리스를 보여 주는 장면으로 월터와 필리스가 섹스를 했음을 암시한다.
로렌스 캐스단 감독의 ‘보디 히트’는 ‘이중 배상’이 담을 수 없었던 섹스를 포함시킨 현대판 ‘이중 배상’이다.
물론 ‘보디 히트’는 ‘이중 배상’의 리메이크작은 아니다. 하지만 리메이크작이라고 해도 될 만큼 영화의 이야기가 ‘이중 배상’과 너무나 흡사하다.
‘보디 히트’에서 남편 에드먼드 워커(Richard Crenna)를 살해하고 남편의 재산을 가로챌 음모를 품고 있는
매티 워커(Kathleen Turner)와, 매티의 유혹에 넘어가 매티의 남편을 살해하는 네드 라신(William Hurt)의 대담한 섹스는 지금 보아도 아찔하다.
‘보디 히트’의 연출뿐만이 아니라 각본까지 쓴 로렌스 캐스단 감독은 자신이 ‘보디 히트’를 구상하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준
‘이중 배상’의 이야기에서 부족한 점을 정확히 파악했다.
‘보디 히트’가 보여 주는 네드와 매티의 대담한 섹스 장면은 단지 관객들에게 시각적 자극을 주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관객들에게 매티가 얼마나 요사스러운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 그리고 매티의 유혹에 넘어가 결국 매티의 남편을
살해하는 네드의 행동을 이해시키기 위해서이다. 네드가 요사스러운 매티의 유혹에 넘어간 이유와,
매티의 남편을 살해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이중 배상’보다도 훨씬 설득력이 있다.
‘보디 히트’는 네드와 매티의 대담한 섹스뿐만이 아니라, 처음 만난 네드와 매티가 서로를 탐색하면서 나누는 대화도 더욱 대담해졌다.
‘이중 배상’에서 처음 만난 월터와 필리스가 나누는 대화와, ‘보디 히트’에서 처음 만난 네드와 매티가 나누는 대화를 비교해 보라.
월터와 필리스는 성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속도 제한”과 “딱지”에 관한 농담으로 아슬아슬한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네드와 매티가 나누는 대화는 보다 노골적이다. 네드가 매티가 어디 사는지 떠보기 위해 매티에게 말한다.
“당신은 파인해븐처럼 생겼어요….잘 가꾸어졌어요.”
그러자 매티가 묻는다. “그래요, 난 잘 가꾸어졌어요….당신은요?”
네드가 대답한다. “난 좀 가꾸어져야 해요. 날 가꾸어 줄 누군가가, 내 피곤한 근육을 풀어 주고 내 침대 시트를 매만져 줄 누군가가 필요해요.”
매티가 말한다. “결혼하세요.”
네드가 대답한다. “난 그 누군가가 오늘밤만 필요해요.”
‘보디 히트’에서는 팜므 파탈도 더욱 악독해졌다. ‘이중 배상’에서는 월터뿐만이 아니라 필리스 자신도 파멸하고 만다.
필리스는 월터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필리스는 월터가 쏜 총을 맞고 죽는다.
‘보디 히트’에서 매티도 죽기 직전에 네드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한다. “네드,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난 당신을 사랑해요.”
‘이중 배상’에서는 관객들에게 필리스는 진짜 월터를 사랑했는지도 모른다는 여운을 남겨 필리스에게 일말의 동정심을 느끼게도 하지만,
‘보디 히트’에서는 네드를 사랑한다는 매티의 말이 완전 거짓이었음이 매티가 죽지 않고 어딘지 모를 외국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여실히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