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 1939)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 1939)
쉰들러 리스트 (Schindler’s List, 1993)
1939년은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최고의 해라 불릴 만큼 수많은 명작들이 쏟아진 해였다.
현재도 명작으로 평가 받고 있는 ‘굿바이 미스터 칩스 (Goodbye, Mr. Chips, 1939)’,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Mr. Smith Goes to Washington, 1939)’, ‘역마차 (Stagecoach, 1939)’
‘오즈의 마법사 (The Wizard of Oz, 1939)’, ‘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hts, 1939)’이 1939년에 나온 영화들이다.
미국의 여류 작가 마가렛 미첼의 동명의 소설이 원작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1939년에 나온
수많은 명작들 중에서도 최고 명작으로 꼽히는데, 작품상을 포함하여 감독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각색상, 촬영상, 편집상, 미술상의 8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도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영화로 꼽히곤 한다.
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대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처음 보았다. 그리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다시 한번 더 볼 때는 원작 소설 완역본과 비교, 분석까지 하면서 보았다.
워낙 오래 전 일이라 지금은 내 기억 속에 소설의 이야기는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소설과 함께 영화를 볼 당시에는 도저히 영화로 만들 수 없을 것 같았던 방대한 이야기를,
게다가 스케일도 큰 소설을, 물론 소설의 많은 부분의 이야기들이 빠지긴 했지만, 소설이 주는 감동은 빠뜨리지 않은 채
영화에 그대로 담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방대한 분량의 소설의 이야기가
아카데미 각색상에 빛나는 당시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였던 시드니 하워드의 각색으로 소설의 감동은
그대로 보존된 채 압축되어 영화에 담겨졌으며,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인만큼 그 큰 스케일은
막대한 인원과 물량이 투입된 스케일이 큰 화면들이 대신한다. 그 대표적인 유명한 장면이 스칼렛(Vivien Leigh)이
닥터 미드(Harry Davenport)를 찾으러 부상자들을 지나는 장면과 스칼렛과 레트(Clark Gable)가 화염에 휩싸인
애틀란타시를 빠져나가는 장면인데, 스칼렛이 부상자들을 지나는 장면을 찍기 위해 800명의 엑스트라와 800개의
인형이 동원되었으며, 화염에 휩싸인 애틀란타시 장면을 위해 ‘킹콩 (King Kong, 1933)’의
촬영장으로 쓰였던 12 헥타르나 되는 넓은 세트장을 불태웠다 한다.
무엇보다도 소설과 영화를 같이 볼 당시에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영화 속 두 주인공인 스칼렛 오하라와
레트 버틀러 역을 맡은 비비안 리와 클라크 게이블이 소설에서 묘사한 두 주인공의 이미지와 너무나 똑같았다는 점이다.
마치 마가렛 미첼이 비비안 리와 클라크 게이블을 모델로 스칼렛과 레트의 캐릭터를 창조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영화 속 비비안 리와 클라크 게이블은 소설 속 스칼렛과 레트 그 자체였다. 사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제작 과정에서 제작자 데이빗 오 셀즈닉의 주연 배우 캐스팅 비화는 유명하다. 데이빗 오 셀즈닉은 레트 버틀러
역으로 일찌감치 클라크 게이블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스칼렛 오하라 역을 맡을 여배우는 애틀란타시가 불타는 장면으로 영화
촬영이 시작될 때까지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데이빗 오 셀즈닉은 2년 동안 전국 각지에서의 공개 오디션과
캐서린 헵번, 베티 데이비스, 진 아더, 폴레트 고다르, 라나 터너 등 할리우드의 거의 모든 유명한 여배우들의 카메라 테스트를 거친 후,
결국 연극에서 만난 로렌스 올리비에와 사랑에 빠져, ‘폭풍의 언덕’의 촬영으로 미국에 있는 로렌스
올리비에를 쫓아 미국으로 건너온 영국 여배우 비비안 리를 스칼렛 오하라 역으로 결정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