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1971)
시계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1971)
‘시계태엽 오렌지’의 원제목은 ‘A Clockwork Orange’이다. 한국 제목은 원제목의 각 단어를 따로따로 번역을 하였는데, 사전에서 “clockwork orange”를 바로 찾을 수 있다.
“clockwork orange”는 “과학에 의해 개성을 잃고 로봇화한 인간”을 의미한다.
‘시계태엽 오렌지’의 주인공인 알렉스(Malcolm McDowell)는 피트(Michael Tarn), 조지(James Marcus), 딤(Warren Clarke)으로 구성된
폭력단의 우두머리로, 폭력단원들을 이끌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다닌다.
술 취한 늙은 부랑자(Paul Farrell)를 폭행하기도 하고, 어느 “집”에 침입하여 남편을 폭행하고 남편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강간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양이 여인(Miriam Karlin)을 살해한 알렉스는 자신에게 불만을 품은 폭력단원들의 배신으로 혼자 경찰에 잡혀 교도소에 들어가게 된다.
알렉스는 폭력 범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실험 중인 세뇌 교육의 일종인 루드비코 치료법의 실험 대상이 된다.
루드비코 치료를 받은 알렉스는 악을 보면 구역질을 동반한 신체적 거부 반응을 일으키도록 개조된 “clockwork orange”가 된다.
안토니 버지스의 동명의 소설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각색을 하고 연출을 한 ‘시계태엽 오렌지’는 영화의 이야기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나,
영화의 이야기가 제기하는 문제들이 상당히 논쟁적인 영화이다.
‘시계태엽 오렌지’는 알렉스를 통해 보여 주는 인간의 폭력성과, 폭력 범죄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인간 개개인을 통제하려는 정부를 대치시키면서,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문제들을 제기한다.
무대에 선 알렉스를 통해 루드비코 치료법의 결과를 확인한 교회사(Godfrey Quigley)가 말한다.
“그는 나쁜 짓은 그만두었지만 도덕적 선택이 불가능한 존재가 되었잖소.”
그러자 내무부 장관(Anthony Sharp)이 말한다. “우리는 동기나 도덕 따위는 관심 없소.
우리의 관심은 범죄를 줄이고, 혼잡한 교도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소.”
‘시계태엽 오렌지’는 교화로 인간의 악한 본성을 바꿀 수 있는가에 의문을 제기한다.
‘시계태엽 오렌지’는 교도소에서 2년을 보낸 알렉스를 통해 설교와 성경에 의한 교화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심지어 루드비코 치료를 받은 후에 악을 보면 신체적 거부 반응을 일으키던 알렉스가 결국은 다시 악한 본성을 드러내는 – “난 완전히 치유되었어.” –
영화의 결말을 통해 인간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본다.
교도소의 간수장(Michael Gover)은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교화 자체를 부정한다.
교도소의 간수장이 루드비코 치료원으로 이송되는 알렉스에게 말한다.
“눈에는 눈이야. 누가 널 치면 너도 받아치지 않겠어? 너같은 깡패들에게 맞았는데도 정부는 왜 받아치면 왜 안 되는 거지?
새 정책은 그러면 안 된다는군. 새 정책은 우리가 악을 선으로 바꾼다는 거야. 내가 보기에는 이건 너무 불공평해.”
‘시계태엽 오렌지’는 인간의 폭력성을 억압하기 위해 인간 개개인을 통제하면서 발생하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침해하는 문제도 제기한다.
루드비코 치료법은 알렉스를 악을 보면 신체적 거부 반응을 일으키도록 개조시키지만,
이와 함께 알렉스가 좋아하던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을 들어도 신체적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부작용도 초래한다.
교회사가 루드비코 치료법에 관심을 보이는 알렉스에게 말한다.
“선은 사람의 내면에서 나오는 거야. 선은 선택하는 거야. 사람이 선택을 하지 못한다면 그건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거지.”
하지만 인간의 자유 의지만을 긍정할 때 심각해질 수 있는 사회 폭력 범죄 문제와 폭력 범죄의 피해자가 받는 상처를 알렉산더 씨(Patrick Magee)를 통해 보여 준다.
정부가 실험 중인 루드비코 치료법을 전체주의를 위한 도구로 규정, 정부의 범죄 정책에 반대하는 알렉산더 씨는 경찰에게 폭행을 당하고
우연히 자신의 “집”을 찾아온 알렉스가 바로 루드비코 치료법의 희생자임을 알아내고는 알렉스를 이용하여 정부의 재선을 막으려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알렉스가 몇 년 전 자신을 폭행하고 아내(Adrienne Corri)를 강간했던 비행 청소년임을 알게 된
알렉산더 씨는 큰 충격을 받고, 결국 복수심에 알렉스를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으로 고문을 한다.
‘시계태엽의 오렌지’는 정답이 없는 논쟁적인 문제들을 제기함과 동시에, 알렉스와 같은 청소년들의 성범죄를 부추기는
음란물이 범람하는 사회와, 정책에 반대하는 자들을 억압하고 여론에 따라 정책을 번복하는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시계태엽 오렌지’는 영화의 이야기가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한 논쟁뿐만이 아니라 영화 자체에 대한 논쟁도 불러일으켰다.
가까운 미래가 배경인 ‘시계태엽 오렌지’의 이야기는 초현실적이고 상징적이면서, 굉장히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알렉스가 ‘Singin’ in the Rain’을 부르며 알렉산더 씨를 폭행하는 장면을 통해 알렉스의 사악함을 표현하고,
알렉산더 부인이 입고 있는 옷을 알렉스가 가위로 조금씩 잘라내는 장면을 통해 강간을 당하는 알렉산더 부인의 고통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러한 표현이 오히려 폭력을 미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실제로 ‘ 시계태엽 오렌지 ‘가 영국에서 개봉하고 나서 영화에 나오는 범죄 장면을 모방한 범죄들이 잇달아 일어났다.
이 때문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자신이 직접 나서서 ‘시계태엽 오렌지’의 영국에서의 상영을 금지시켰다.
이후 27년동안 ‘시계태엽 오렌지’는 영국에서의 상영이 금지되었으며,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사망한 후에 VHS와 DVD가 출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