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의 조건 Terms of Endearment 1983
애정의 조건 Terms of Endearment 1983
사계절의 사나이 A Man for All Seasons 1966
인생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종종 ‘고락이 반반’이라는 속담이 떠오르곤 한다.
우리 모두 삶의 희로애락이 적절히 섞여 있음을 경험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제임스 L. 브룩스 감독의 영화 애정의 조건은 이 속담을 가장 뛰어난 방식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단지 이야기뿐만 아니라 영화의 형식과 감정선도 이 속담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과부 오로라(셜리 맥클레인)와 그녀의 외동딸 엠마(데브라 윙거)의 인생사가 있다.
이들 모녀는 서로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대립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확인한다.
감독은 이들의 이야기에 웃음과 눈물을 적당히 섞으며 관객들이 때로는 소리 내어 웃고, 때로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희극과 비극의 균형감이 돋보이는, 그야말로 ‘고락이 반반인’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는 오로라라는 엄마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다분히 과보호적인 오로라는 아기 엠마가 자는 도중 돌연사하지 않을까 염려해 5분 간격으로 그녀를 깨우는 극성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또, 남편을 잃고 홀로 된 그녀가 어린 엠마에게 같이 자자고 조르는 모습은 철부지 같으면서도 인간적이다.
어머니로부터 독립하고 싶었던 엠마는 결국 오로라의 반대를 무릅쓰고 장래성이 부족한 플랩(제프 대니얼스)과 서둘러 결혼하지만
결혼식날마저 참석하지 않는 오로라의 완강함은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을 여실히 드러낸다.
엠마는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대학 교수가 된 남편과 함께 아이오와로 떠난다.
한편, 딸을 떠나보낸 오로라는 옆집 우주비행사 출신 게릿(잭 니콜슨)과 데이트하며 다시금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지만, 엠마 역시 마냥 행복하진 않다.
두 아이를 낳아 어머니가 됐지만 남편 플랩의 외도로 깊은 상처를 받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우연히 만난 은행원 샘(존 리스고우)과 관계를 이어간다.
이 복잡하고도 평범한 인생 군상들은 때론 유쾌하고 때론 애잔하게 그려지며 보는 이의 감정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아직까지 애정의 조건만큼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감동적으로 담아낸 미국 영화를 본 적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품은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을 깊이 어루만진다.
감독은 극적인 요소가 많지 않은 이야기를 유머와 여운으로 풀어내 영화가 지루함 없이 이어지게 했으며, 힘겨운 순간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삶의 본질을 관객들에게 자연스레 전한다.
슬픔으로 분위기가 급반전되는 순간들조차 지나치게 갑작스럽거나 인위적이지 않고, 오히려 “이런 게 인생”이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자연스러움이 돋보인다.
엠마가 암에 걸려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들은 눈물 없이는 보기 어렵다.
특히 병실에서 어린 두 아들 타미(트로이 비숍)와 테디(허클베리 폭스)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거나
어머니와 눈을 맞춘 채 숨을 거두는 순간은 화면 너머로도 깊은 슬픔과 여운을 전달한다.
하지만 영화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손녀 멜라니(메건 모리스)를 품에 안고 미소 짓는 오로라의 마지막 모습은 ‘사는 사람은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것’임을 말하며 새로운 시작을 암시한다.
영화가 특별했던 또 다른 이유는 배우들의 독보적인 연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