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번치 (The Wild Bunch, 1969)
와일드 번치 (The Wild Bunch, 1969)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Bonnie and Clyde, 1967)
영웅주의적이고 낭만주의적인 정통 서부 영화와는 달리, 반영웅주의적이고 사실주의적이며
현실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는 수정주의 서부 영화들이 1960년대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수정주의 서부 영화들로는 샘 페킨파 감독의 ‘와일드 번치’, 조지 로이 힐 감독의
‘내일을 향해 쏴라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1969)’, 아서 펜 감독의 ‘작은 거인 (Little Big Man, 1970)’ 등이 있다.
어딘가에서 ‘와일드 번치’는 에릭 시갈(Erich Segal)식 수정주의 서부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 대한
헤밍웨이식 응답이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만큼 ‘와일드 번치’와 ‘내일을 향해 쏴라’는 영화의 이야기 구조나
영화의 주제 등 많은 부분이 흡사하면서도 영화의 스타일은 서로 많이 다른 영화들이다.
‘내일을 향해 쏴라’가 재치와 정감이 넘치고, 우회적이면서 조금은 영화적인데 반해 ‘와일드 번치’는 냉철하고 대담하며, 직설적이고 좀더 사실적이다.
텍사스주의 한 마을에 미국 군인들로 보이는 한 무리가 나타난다.
이들은 철도 회사 사무실에 들어서자 마자 강도들로 돌변해 금고를 털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들은 이들을 잡기 위해 철도 회사에서 고용한 무리에게 포위를 당하게 되고
마을을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철도 회사에서 고용한 무리와 처참한 총격전을 벌이게 된다.
마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 샘 페킨파 감독은 이 장면들을 통해 그 당시 명분 없는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미국 군인들로 변장한 반영웅주의 이미지의 무리는 미국을, 마을은 베트남을 상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와일드 번치’도 ‘내일을 향해 쏴라’와 마찬가지로 변화하는 시대와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범법자들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있다.
철도 회사의 이익에 방해가 되는 파이크(William Holden)가 이끄는 일당을 잡기 위해서
무고한 마을 사람들의 희생도 서슴지 않는 타락한 철도 회사 간부 해리건(Albert Dekker)은 이익과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폭력과 희생도 정당화시키는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를 상징하고 있다.
파이크 일당은 해리건의 협박으로 할 수 없이 고용된 파이크의 옛동료 손튼(Robert Ryan)이 이끄는 추적대를 피해 멕시코로 가지만
앤젤(Jaime Sanchez)의 마을에서, 또다른 사회의 부조리를 상징하고 있는 타락한 멕시코 연방군 장군 마파치(Emilio Fernandez)의 착취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목격하게 되고,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자신들 또한 마파치에게 조종 당하는 신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