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프론트 On the Waterfront 1954
워터프론트 On the Waterfront 1954
엘리아 카잔 감독이 7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명예상을 받기 위해 무대에 올랐을 때, 칼 말든, 워렌 비티,
메릴 스트립 등은 기립 박수로 거장의 업적을 축하했다. 그러나 스티븐 스필버그와 짐 캐리는 자리에서 조용히 박수를 쳤고,
에드 해리스, 홀리 헌터, 닉 놀테,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박수조차 보내지 않았다. 카잔은 ‘신사협정’,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워터프론트’ 등 수많은 명작을 제작한 감독으로, 영화 경력만으로도 명예상의 자격이 충분했으나, 그의 과거는 논란의 중심에 섰다.
1952년 매카시즘의 광풍이 휩싸인 미국에서 그는 반미 활동 조사 위원회에 출석해 과거 공산주의 활동 당시 동료였던 8명의 이름을 공개했다.
이로 인해 그는 평생 자신을 위해 동료를 배신했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따라서 그가 명예상 수상자로 결정되자 이러한 과거사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카잔 감독이 1954년에 만든 영화 ‘워터프론트’는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자기 변호와도 같은 작품이다.
영화 속 주인공 테리는 부패한 부두 조직의 하수인으로 살아가면서 양심과 배신의 갈림길에서 고뇌하는 인물이다.
테리는 범죄 조직의 부정을 폭로하려는 조이를 살해하는 음모에 연루되고 죄책감을 느낀다.
이후 조니가 획책한 범죄를 두고 증언할지 망설이는 테리는 조직의 보복과 형 찰리의 죽음을 겪으면서 결국 증언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정의를 위한 것이었음에도 동료들로부터 배신자로 낙인 찍히는 결과를 낳는다.
영화는 테리와 같은 처지에 있었던 카잔 본인의 경험을 투영하고 있다.
“워터프론트”에서 테리가 던지는 대사—”네 입장에서 보면 내가 배신자일지 몰라도, 난 내 자신을 배신하며 살아왔어”—는 마치 그의 항변처럼 들린다.
카잔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고, 공산주의의 이념에서 벗어나게 된 이유를 관객들에게 전달하려 했다.
‘워터프론트’는 한 개인의 양심적 선택과 그 과정에서 직면하는 도덕적 갈등을 집중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테리가 친구 조이의 여동생 에디와 사랑에 빠지며 변화하는 모습,
그리고 배리 신부가 노동자들을 설득하며 행한 연설은 영화 전체의 핵심적인 전환점으로 작용한다.
또한 택시 안에서 테리와 형 찰리가 나누는 대화는 극적 긴장감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말론 브랜도의 섬세한 연기와 로드 스타이거의 고뇌 어린 표현력은 이 장면을 할리우드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만들었다.
말론 브랜도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에바 마리 세인트는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워터프론트’는 총 8개 부문에서 수상을 기록하며 작품성과 감독상 등 주요 부문에서도 이름을 올렸다.
엘리아 카잔은 2003년 9월 28일, 94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삶은 영광과 비난이 교차했던 시간이었다.
매카시즘과 관련된 그의 행동은 논란거리로 남았지만, 영화계에 끼친 영향은 막대했다.
영화의 사실성을 높이고 신인 배우들을 발굴하는 데 탁월했던 그는 말론 브랜도, 제임스 딘, 워렌 비티 같은 배우들을 배출하며 후대 감독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공로가 그에게 명예상을 안긴 결정적인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