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 스토리 (The Philadelphia Story, 1940)
필라델피아 스토리 (The Philadelphia Story, 1940)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 1943)
‘필라델피아 스토리’는 그야말로 캐서린 헵번의, 캐서린 헵번에 의한, 캐서린 헵번을 위한 영화이다.
‘필라델피아 스토리’가 나올 당시 캐서린 헵번에 대한 평판이 좋지 않았다.
캐서린 헵번은 하워드 혹스 감독의 ‘아이 양육 (Bringing Up Baby, 1938)’을 포함한 출연작들의 거듭되는 흥행 실패로
“박스 오피스 포이즌(Box Office Poison)”이라는 오명과 함께, 자신의 소속사인 영화 제작사 RKO 라디오 픽처스(RKO Radio Pictures)에
해약금을 지불하고 RKO 라디오 픽처스를 나오는 바람에 도도하고 성깔 있는 여배우라는 비호감 이미지까지 뒤집어쓰고 있었다.
캐서린 헵번은 할리우드를 떠나 자신의 고향인 브로드웨이 연극 무대로 복귀하는데
첫 복귀작이 필립 배리가 당시 평판이 좋지 않은 캐서린 헵번을 바탕으로 각본을 쓴 연극 ‘필라델피아 스토리 (The Philadelphia Story)’이다.
연극은 흥행 대박을 터뜨린다.
캐서린 헵번은 연극 ‘필라델피아 스토리’의 영화화 판권을 사들이고, 영화에서도 자신이 주인공 트레이시 로드 역을 맡는다는 조건과
영화를 연출할 감독과 다른 주연 배우들도 자신이 결정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연극 ‘필라델피아 스토리’의 영화화 판권을 영화 제작사 MGM사에 싸게 넘긴다.
캐서린 헵번은 이미 네 편의 영화에서 같이 일했던 조지 쿠커 감독에게 ‘필라델피아 스토리’의 연출을 맡긴다.
캐서린 헵번은 남자 주인공 C.K. 덱스터 헤븐 역과 맥콜리 코너 역에 각각 클라크 게이블과 스펜서 트레이시를 캐스팅하려 하였으나 성사되지 못하고
대신 이미 세 편의 영화에서 연기 호흡을 맞추었던 캐리 그랜트를 C.K. 덱스터 헤븐 역에, 그리고 제임스 스튜어트를 맥콜리 코너 역에 캐스팅한다.
‘필라델피아 스토리’는 흥행에 성공한다.
캐서린 헵번은 “박스 오피스 포이즌”이라는 오명과 비호감 이미지를 벗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영화 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 AFI)가 1999년에 선정한 “위대한 미국 영화 배우 100
(AFI’s 100 Years…100 Stars)”에서 여자 배우 1위에 오른 영화 배우가 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일거수일투족이 지역 신문의 가십 거리가 되는 필라델피아의 오래된 가문의 장녀이자 이혼녀인
트레이시 로드(Katharine Hepburn)는 우아하고 매력적이면서도, 자존심 강하고 도도하고 호불호가 명확한 “여신”과 같은 여성이다.
트레이시 로드의 이미지는 캐서린 헵번의 실제 캐릭터는 어떠했는지 몰라도 적어도
당시 대중이 바라보는 캐서린 헵번에 대한 비호감 이미지와 일치한다. 전남편 C.K. 덱스터 헤븐(Cary Grant)과 이혼을 한 지 2년 만에
조지 키트레지(John Howard)와 결혼하려는 트레이시 로드는 바로 충동적으로 RKO사를 나온 캐서린 헵번이다.
‘필라델피아 스토리’는 트레이시 로드가 “여신”의 이미지를 벗고 좀 더 인간적인 면모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데
다분히 캐서린 헵번에게 비호감 이미지를 벗겨 주기 위한 의도가 엿보이는 영화이다.
전처 트레이시 로드의 결혼식 전날 C.K. 덱스터 헤븐은 자신이 일하는 “스파이” 잡지사의 직원인 작가 맥콜리 코너(James Stewart)와
사진사 엘리자베스 임브리(Ruth Hussey)를 이끌고 트레이시 로드의 결혼식이 열릴 트레이시 로드의 부모의 저택에 나타난다.
C.K. 덱스터 헤븐은 트레이시 로드의 결혼식을 몰래 취재하기 위해 온 맥콜리 코너와 엘리자베스 임브리를 트레이시 로드에게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서 일하고 있는 트레이시 로드의 오빠 주니어스의 친구들이라고 속인다.
결혼식이 가까워질수록 맥콜리 코너는 매력적인 트레이시 로드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고
트레이시 로드 또한 맥콜리 코너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상황이 복잡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