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쉬빌

내쉬빌 (Nashville, 1975)

내쉬빌 (Nashville, 1975)

내쉬빌 (Nashville, 1975)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영화들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로버트 알트먼이라는

이름을 유명하게 만든 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초기 대표작, ‘야전병원 매쉬 (MASH, 1970)’와 ‘내쉬빌’을 보면 확실히

다른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로버트 알트먼 감독만의 내쉬빌 독특한 영화 형식을 확인할 수 있다. 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영화들은 언뜻 보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의 영화인가 싶다. 기본 줄거리 없이 서로 다른 여러 작은 이야기들이

얽혀 있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연과 조연의 구분이 없는 수많은 캐릭터들의 등장과, 대사들을 무질서하게 겹쳐 놓는 방식으로

도대체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내기조차 힘들다.

로버트 알트먼 감독은 끝을 향해 달려가는 직선적인 줄거리를 가진,

주연과 조연의 역할이 뚜렷한, 그리고 한 캐릭터만 대사를 하게 하는 재래의 영화 형식을 거부한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영화에서처럼 끝이 있는 직선적인 줄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세상은 서로 다른 여러 이야기들이 얽혀 있으며,

그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도 주연과 조연이 따로 없이 서로 충돌하고 맞닥뜨리면서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다.

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독특한 영화 형식은 이러한 복잡한 세상을 표현하고 있다. 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영화들은 영화의

이야기에 앞서 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독특한 영화 형식 자체가 이미 하나의 주제를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영화들은 서로 다른 여러 이야기들이 단지 무질서하게 얽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전개될수록 서로 다른 여러 이야기들이 점차 어떤 경향을 띠게 되면서 하나의 주제를 형성한다.

내쉬빌은 테네시의 주도로, 컨트리 음악으로 유명한 도시이며, 한때 미국 음반의 대다수가 내쉬빌에서 만들어졌다. ‘내쉬빌’은 대통령 예비

선거를 엿새 앞둔 시점에서 5일 동안 내쉬빌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을 다룬다. 누가 누구인지

분간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영화에서의 역할 비중이 비슷비슷한, 여러 부류의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쉬빌’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보면 삶이 참 허망하게 느껴진다. 저마다 남모르는 아픔이 있다.

화재 사고로 볼티모어에서 치료를 받고 내쉬빌로 돌아온 인기 컨트리 가수 바바라 진(Ronee Blakley)은

팬들에게 보여 주는 밝은 겉모습과는 달리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하다. 그녀의 매니저이자 남편인 바넷(Allen Garfield)은 자기중심적이고

다혈질인 사내이다. 대통령 예비 선거 전날에 파르테논에서 열리는 대안당의 대통령 후보자 할 필립 워커의 선거 운동 집회를

준비하고 있는 존 트리플렛(Michael Murphy)은 바바라 진이 집회에서 노래를 불러 주기를 바라지만, 바넷은 정치권과 엮이고

싶지 않다고 단호하게 거절한다. 평범한 가스펠 가수이자, 두 청각 장애인 아들의 엄마이기도 한 리네아 리즈(Lily Tomlin)는

청각 장애인 아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 남편 델버트 리즈(Ned Beatty)와의 결혼 생활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리네아 리즈는 만나고 싶다고 끈질기게 전화질을 해대는 톰 프랭크(Keith Carradine)에게 마음이 흔들린다.

그린 씨(Keenan Wynn)는 세상을 막 떠난 아내 에스더를 생각하며 비통해 한다.

숙모가 세상을 떠났는데도 그린 씨의 철없는 조카 L. A. 조안(Shelley Duvall)은 남자 가수들을 쫓아다니기 바쁘다.

아첨 잘하는 컨트리 가수 헤이븐 해밀턴(Henry Gibson)은 정치적 야망을 가지고 있다. 헤이븐 해밀턴의 정부인 레이디 펄(Barbara Baxley)은

케네디가에 대한 향수에 젖어 살고 있다. 외로운 병사 글렌 켈리 일등병(Scott Glenn)은 화재 사고에서

바바라 진을 구한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바바라 진을 따라다니며 그녀 곁을 지키고 있다.

‘내쉬빌’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할 필립 워커의 선거 운동 집회가 열리는 파르테논에 모여든다.

이들이 각자 삶에서 느끼던 허망감이 이곳 파르테논에서 갑작스레 벌어진 총격 사건으로 극에 달한다.

순수해 보이던 청년 케니 프레이저(David Hayward)가 바바라 진을 향해 총을 쏜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파르테논에 모인 이들에게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까지 허망감을 안겨 준다.

영화에서 케니 프레이저가 바바라 진을 향해 총을 쏜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더 허망하다.

‘내쉬빌’은 미국 독립 정신을 기리기 위한 미국 독립 20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그리고 미국 국민들에게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일으킨 워터게이터 사건과 베트남전이 일어났을 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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