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상을 수상한

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 – 기생충 (2019)

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 – 기생충 (2019)

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 – 기생충 (2019)

레드 리버 (Red River, 1948)

7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기생충’으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은 수상 소감을 통해

“자막, 서브타이틀의 장벽을, 장벽도 아니죠, 한 1인치 되는 그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들이 훨씬 더 많은 영화들을 즐길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장벽을 뛰어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단지 즐기기 위해 영화를 찾는 관객들에게 외국어 영화의 자막,

서브타이틀을 읽는다는 것은 여간 부담스럽고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대사를 번역한 자막, 서브타이틀로 외국어 영화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제대로 즐기기에는 한계가 있다.

관객들에게 대사의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영화가 의도한 주제마저 흐리는 오역 논란도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지만,

아무리 대사를 잘 번역하려고 해도 대사의 뉘앙스를 살려 내기는 결코 쉽지 않다.

결국 외국어 영화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단순히 자막, 서브타이틀의 장벽이 아니라,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야 하고, 그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의 문화까지 이해를 해야만 한다.

이러한 자막, 서브타이틀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기생충’이 72회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외국어 영화 최초로 작품상을 수상하고, 감독상과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까지 수상하여 총 4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것은 ‘기생충’의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한 봉준호 감독이

관객들을 위하여 자막, 서브타이틀의 장벽을 최대한 낮춰 주었기 때문이다.

극과 극의 삶을 사는 두 가족의 만남이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을 터트리며 관객들에게 웃음과 슬픔,

충격과 공감을 전해 주는 신선한 ‘기생충’의 이야기는 관객들이 자막,

서브타이틀을 읽는 것에 대한 부담과 귀찮음을 뛰어넘게 만들었고, 두 가족이 충돌하는 이야기를 통해 명확하고 쉽게

드러나는 인류 보편적인 ‘기생충’의 주제는 관객들에게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온 가족이 전원 백수로, 요금도 못내 가족 전원의 핸드폰이 끊길 정도로 살기 막막한 기택(송강호)네 가족의 장남 기우(최우식)는

유학을 가게 된 명문대생 친구 민혁(박서준)의 소개로 글로벌 IT기업 CEO인 동익(이선균)의 장녀 다혜(정지소)의 과외 선생이 된다.

기우는 동익의 아내 연교(조여정)에게 여동생 기정(박소담)을 일리노이 주립대 응용미술과를 다닌, 사촌의 과후배라고

속이고 연교의 막내 아들 다송(정현준)의 미술 선생님으로 추천한다. 이어서 기우와 기정은 동익네 가족의 운전기사

윤기사(박근록)와 가사도우미 문광(이정은)을 차례로 몰아내고

아빠 기택과 엄마 충숙(장혜진)이 각각 윤기사와 문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한다.

이렇게 온 식구가 동익네 가족에 취업하여 기생을 하게 된 기택네 가족은 문광 외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

동익의 집 지하 비밀공간에서 진짜 기생을 하고 있는, 문광의 남편 근세(박명훈)를 발견하게 된다.

‘기생충’은 기택네 가족과 동익네 가족이 충돌하는 이야기를 통해 부에 따라 서열화된 우리 시대 계급 문제와,

계급 상승이나 계층 이동이 점점 불가능해지고 상층 계급과 하층 계급의 구분이 점점 뚜렷해지는 신분 고착화 현상이 두드러져 가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자화상을 보여 주는 영화이다. ‘기생충’에서 눈여겨볼 만한 점은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온 가족이 전원백수인 기택네 가족이 동익네 가족에 취업하기 위하여 세우는 계획은 치밀한 범죄모의라기보다는

가족들의 평범한 삶을 위해 노력하는 엉뚱한 절박함으로 느껴져 헛웃음마저 짓게 한다. 또한, 동익은 “선을 넘는”

기택의 냄새에 관한 말로 기택에게 모욕감을 주게 되고, 이로 인해 기택은 다송의 생일파티가 열리는 동익의 집 정원에서

동익을 충동적으로 죽이게 되는데, 기택에게 모욕감을 준 동익의 말은 동익이 기택이 거실의 테이블 밑에 숨어있는 줄 모르고

아내 연교에게 한 말이고, 더우기 기택에게 악의를 가지고 의도적으로 한 말이 아니다.

‘기생충’의 등장인물 그 누구도 악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관객들은 기택이 동익을 죽이는데도 불구하고 기택이 나쁜 놈이다라거나,

동익이 죽을 짓을 했다거나 하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결국 두 가족에게 벌어진 비극은 개인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계급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층 계급과 하층 계급의 구분이 점점 뚜렷해지고,

상층 계급과 하층 계급이 서로 공생하는 것조차 힘들어져 가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씁쓸한 자화상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기생충’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바로 기택과 기우, 기정이 동익의 집에서 빠져나와 자신들의 반지하 집을 향해 망연자실 폭우 속을 걸어가는 장면이다.

익스트림 롱 숏으로 찍은 장면은 마치 지옥을 향해 내려가는 듯 계속해서 계단을

내려가고 또 내려가는 세 사람을 보여 준다. 온 식구가 동익네 가족에 취업하여 잠깐 동안이나마

계급 상승의 꿈에 도취해 있던 기택네 가족이 문광과 근세의 등장으로 인하여 원래 자신들이 속했던

계급으로 하강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세 사람은 계단을 내려가고 또 내려가 폭우로 흙탕물에 잠긴,

그야말로 지옥으로 변해 버린 자신들의 반지하 집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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