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Letters from Iwo Jima, 2006)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Letters from Iwo Jima, 2006)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이오지마 섬에서 미군과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이오지마 전투를 배경으로 한 두 편의 영화
‘아버지의 깃발 (Flags of Our Fathers, 2006)’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 를 잇달아 연출한다.
한 감독에 의해 잇달아 연출되긴 했지만, 두 영화는 서로 완전 독립적이다.
두 영화에서 이오지마 섬 해변에서의 전투를 담은 몇 장면이 겹쳐지긴 하지만, ‘아버지의 깃발’은 철저하게 미국의 시각으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철저하게 일본의 시각으로 영화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따라서 두 영화를 꼭 같이 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두 영화를 같이 보면 전쟁의 허무와 휴머니즘을 이야기하는 두 영화의 공통된 주제가 좀더 깊이 있게 와 닿는다.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서로를 보완하면서 완전한 주제를 형성한다.
‘아버지의 깃발’은 이오지마 전투에서 승리한 승자의 시각으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패자의 시각으로 전개되고 있어,
두 영화는 전쟁은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상처만을 남길 뿐이라는 보다 완전한 주제를 형성한다.
또한 ‘아버지의 깃발’은 이오지마 전투에서 희생된 군인들은 뒤로 한 채 자본과 결탁된 미국의 헛된 영웅 만들기를 통해,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일본의 무사도 정신에 입각해 헛된 죽음을 선택하는 일본군을 통해,
그 나라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과는 상관없이 전쟁 자체가 가져다주는 비인간성을 이야기한다.
2005년, 이오지마 섬의 한 동굴에서 이오지마 전투에서 싸웠던 일본군들이 가족들에게 남긴 편지들로 가득한 작은
가방이 일본 발굴자들에 의해 발견된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1944년, 이오지마 전투 직전의 과거로 돌아가 작은 가방 속
편지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내 하나코(Nae)와 함께 제과점을 운영하다 징집되어 이오지마 섬에 오게 된
사이고(Kazunari Ninomiya)는 아내에게 쓴 편지를 읽는 내레이션을 통해 당시 일본군의 열악한 상황과 자신의 심정을 이야기해 준다.
“하나코, 우리 군인들이 구덩이를 파고 있어. 하루종일 파. 우리가 싸우고 죽을 구덩이야.
하나코, 내가 지금 내 무덤을 파고 있는 것일까?”
쿠리바야시 장군(Tadamichi Kuribayashi, Ken Watanabe)이 이오지마 섬 주둔 일본군 사령관으로 부임해 온다.
미국에서 공부를 한 쿠리바야시 장군은 다른 일본인 장교와는 달리,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인간적이다.
‘아버지의 깃발’에서 이오지마 섬 해변에 상륙한 미군은 일본군의 저항이 없어 의아해 하는데,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는 일본군의 전력이 미군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해안 방어는 무모하다 생각하고, 대신에 미군의 폭격과 포격에 대비해 동굴 안에 진지를 구축하고,
미군이 상륙하기를 기다려 기습 공격을 감행한다는 쿠리바야시 장군의 전략이었다.
그러나 일본군은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스리바치산을 미군에게 빼앗기고 만다.
미군의 계속되는 공격보다도 쿠리바야시 장군을 더욱 어렵게 하는 건 일본의 무사도 정신에 입각한 일본군의 옥쇄와 자살식 공격이다.
스리바치산을 지키지 못한 아다치 대령(Toshi Toda)은 반드시 살아남아 북쪽 동굴의 군대와 합류하라는 쿠리바야시 장군의 명령을 어기고
기어이 자결을 선택하고, 아다치 대령의 쪽지를 전해 받은 타니다 대위(Takumi Bando)도 부하들에게 옥쇄를 강요하고 자결한다.
사이고는 동료들이 수류탄으로 자폭하는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다.
스리바치산에서 살아남은 사이고와 시미즈(Ryo Kase)에게 옥쇄를 강요하고,
나중에는 혼자서 폭탄을 안고 용감하게 적지로 뛰어들지만 두려움에 떨며 시체들 사이에서 죽은 척하고 있다가
결국 미군의 포로가 되는 이토 중위(Shido Nakamura)는 비록 비겁해 보이기는 하지만 아다치 대령이나 타니다 대위보다 오히려 인간적으로 보인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에서 영화의 주제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은 전쟁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니시 남작(Takeichi Nishi, Tsuyoshi Ihara)이 숨진 미군 포로 샘(Lucas Elliot)이 가지고 있던,
샘의 엄마가 쓴 편지를 부하들에게 읽어 주는 장면이다. “내가 너에게 했던 말을 기억해라.
항상 옳은 일을 해라. 그것이 옳은 일이니까. 전쟁이 어서 끝나고 네가 무사히 돌아오길 기도하마. 사랑하는 엄마가.”
니시 남작과 그의 부하들은 샘 역시 적이기 이전에 한 가족의 아들이자, 인간이라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