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레 (Cabaret, 1972)
카바레 (Cabaret, 1972)
뮤지컬 영화를 좋아하는 나에게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롭 마샬 감독의 ‘시카고 (Chicago, 2002)’는 꽤 참신한 뮤지컬 영화였다.
관객들을 무조건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으로 카바레 인한 춤과 노래 중심의 조금은 엉성하거나 유치한 각본과,
클래식풍의 노래가 대부분이었던 고전 뮤지컬 영화와는 달리, 화려한 춤과 노래는 물론이고,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더해진 짜임새 있는 각본과, 재즈풍의 노래는 굉장히 새롭고 신선했다.
하지만 ‘시카고’ 훨씬 이전에 이미 ‘시카고’와 비슷한 뮤지컬 영화가 있었다. 바로 밥 포스 감독의 ‘카바레’다.
‘시카고’와 ‘카바레’가 비슷한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니다. ‘카바레’를 연출한 밥 포스 감독이 ‘시카고’의 원작인 뮤지컬 ‘시카고 (Chicago)’의 대본을 썼으며,
‘시카고’와 ‘카바레’에서 나오는 노래 모두 존 캔더가 작곡을 하고, 프레드 엡이 작사를 했다.
‘카바레’는 1966년에 첫 공연을 한 조 마스터로프의 동명의 뮤지컬을 영화화한 것이다.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단편 소설 ‘베를린이여 안녕 (Goodbye to Berlin)’을 존 반 드루텐이 연극 무대로 옮긴 ‘나는 카메라 (I Am a Camera)’를 조
마스터로프가 다시 뮤지컬 무대로 옮겼고, 이것을 밥 포스 감독이 영화화했다.
원래는 댄서이자 안무가이자 뮤지컬 감독인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거물 밥 포스 감독은 그의 두 번째 영화 연출작인 ‘카바레’로 ‘대부
(The Godfather, 1972)’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을 제치고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카바레’는
작품상을 포함한 10개 부문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라, 작품상은 ‘대부’에게 빼앗기긴 했지만,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편집상, 촬영상 등 8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카바레’는 미국 영화
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 AFI)가 2007년에 선정한 “위대한 미국 영화 100 10주년
기념판 (AFI’s 100 Years…100 Movies 10th Anniversary Edition)”에서 63위에 랭크되어 있다.
미국인인 샐리 보울스(Liza Minnelli)는 베를린의 킷캇 클럽에서 댄서로 일하고 있다.
영국에서 온 브라이언 로버츠(Michael York)가 샐리가 머물고 있는 하숙집으로 들어온다.
샐리는 브라이언에게 호감을 가지지만 브라이언은 양성애자다. 하지만 이내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 날 샐리는 자신에게 접근한 부유한 플레이보이 남작 막시밀리언 폰 헤우네(Helmut Griem)의 유혹에 빠지고,
막시밀리언이 샐리뿐만이 아니라 브라이언도 유혹하면서 세 사람은 난잡한 삼각관계에 빠지게 된다.
롭 마샬 감독의 ‘시카고’는 살인 혐의로 수감 중에도 대중의 관심을 받는데에만 혈안이 된 두 여자 주인공,
록시 하트(Renee Zellweger)와 벨마 켈리(Catherine Zeta-Jones), 그리고 록시의 남편 에이모스 하트(John C. Reilly)로부터 거액의
수임료를 받고 언론 플레이를 통해 록시를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게 해주는 타락한 변호사 빌리 플린(Richard Gere)을 통해 타락한 세상을 풍자한다.
특히 ‘시카고’는 영화 형식의 장면과 뮤지컬 형식의 장면의 절묘한 교차 편집으로 전개되는데, 영화 속 현실 세계와 무대 위
쇼의 경계를 애매모호하게 하여 마치 세상은 쇼를 위한 무대일 뿐이며,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무대 위의 쇼 같은 것이라며 타락한 세상에 냉소를 보낸다.
‘카바레’도 ‘시카고’와 비슷한 형식을 띠고 있다.
나치가 힘을 얻기 시작하던 1931년의 베를린이 배경인 ‘카바레’는 몽상적이고 퇴폐적인 샐리와, 양성애자인 브라이언,
그리고 샐리와 브라이언을 동시에 유혹하는 막시밀리언의 난잡한 삼각관계를 통해 나치에 물들어 가는 타락한 세상을 풍자하고 있다.
특히 ‘카바레’는 아카데미 편집상을 수상한 영화답게 킷캇 클럽의 음흉한 무대 사회자(Joel Grey)의 진행으로 펼쳐지는 무대 위의 쇼를
적절하게 삽입하여 막시밀리언의 돈의 유혹에 넘어간 샐리에 냉소를 보내기도 하고, 샐리, 브라이언, 막시밀리언의
난잡한 삼각관계에 냉소를 보내기도 하고, 나치에 물들어 가는 영혼을 상실한 듯한 베를린 사람들에 냉소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타락한 세상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는 또 감동적인 이야기도 있는 것이다.
유대인 신분을 감추고 살아온 프리츠 웬델(Fritz Wepper)은 자신처럼 브라이언에게 영어를 배우는 부유한
유대인 여자 나탈리아 랜다우어(Marisa Berenson)와 사랑에 빠진다. 프리츠는 나치가 득세하고 목숨까지 위태로워질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의 유대인 신분을 나탈리아에게 밝히고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세상에 냉소적인 킷캇 클럽의 음흉한 무대 사회자는 ‘If You Could See Her’을 부르면서 프리츠와 나탈리아의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에도 냉소를 보낸다.